북한 평양의 한 소학교 여학생 2명이 비오는 날 함께 우산을 쓰고 걸어가고 있다. 타커스 제공
올 2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과 관련해 논란이 많았다.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아이스하키 단일팀 반대’라는 청원이 올라와 5만8203명이 동의했다. 청원은 “남한 선수단은 올림픽을 위해 수도 없이 연습하고 준비했다. 남북단일팀을 이룬다면 우리 선수들의 연습과 준비는 다 쓸모없게 된다”며 “지난 4년간의 땀과 노력이 정치적 논리로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돼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한다면 공정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데 남북단일팀의 역사는 오래됐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한 현정화 선수, 북한 이분희 선수가 복식 단일팀으로 출전해 금메달을 땄다. 그해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도 남북단일팀을 구성했다. 평창동계올림픽 때 “태극기 놔두고 왜 한반도기 들고 입장하냐”는 비난이 일부 젊은층에서도 나왔는데 한반도기 역시 1991년부터 사용했다.
지난 7월14일 서울 광화문 한국협동학습연구회 사무실에서 열린 ‘다가오는 통일, 상상체험 통일교무실’ 간담회. 맨 앞줄 왼쪽부터 조창완 좋은교사운동 통일교육위원장, 배수연·박금주·최경옥·이정옥 통일전담교육사. 통일전담교육사 4명은 모두 북에서 교사로 근무했었다. 김태경 기자
조창완 좋은교사운동 통일교육위원장은 “남북단일팀과 한반도기에 대해 청소년과 20대들이 ‘공정성’을 들어 비난을 많이 했다. 지난 10년간 이들이 한반도기와 단일팀을 못 봤기 때문”이라며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사건,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북한 핵실험, 개성공단 폐쇄 등 지난 10년간 북한 관련 소식은 전부 부정적 사건뿐이었다. 이게 청소년과 20대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 위원장의 이같은 분석은 지난 7월14일 서울 광화문 한국협동학습연구회 사무실에서 열린 ‘다가온 통일, 상상체험 통일교무실’ 간담회에서 나왔다. 한반도 화해 분위기 속에서 일선 학교의 통일교육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자리였는데 북한에서 교사로 일하다 탈북한 이정옥?배수연?박금주?최경옥씨 등도 참석했다. 이들은 남한에서 통일전담교육사(이하 교육사)로 재직 중인데 모두 지난 2004~2009년 사이에 입국해 북과 남의 실상을 잘 알고 있다.
■ 지난 10년간 북한 관련 소식 전부 부정적
교육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이 서로에 대해 너무나 모른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통제사회이고, 남한은 부정확한 정보가 이른바 전문가와 언론을 통해 유포되기 때문이다. 북에서 국어·문법·문학 교사로 일하다 2009년 남한에 온 박금주 교육사는 “북한 학교 1시간 수업 가운데 절반 이상을 김일성 일가 우상화 교육에 할애하는 걸로 남한에서 알고 있는 데 놀랐다”며 “북한도 교과 진도와 학습 목표가 있다. 세뇌교육만 하면 지식 전달은 언제 하나? 정치교육은 1~3분 정도고 나머지는 본 수업”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남한 사람들이) 하도 안 믿기에 내가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코제트에 대해 어떤 내용으로 수업했는지 구체적 시범을 보였더니 수긍하더라”며 “북에도 수학?과학 영재들 많다. 맨날 정치교육만 하면 영재들이 어떻게 길러지나?”라며 씁쓸해했다.
탈북자들이 국내에 들어온 지 20년이 넘어 이미 3만1200명이나 된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은 탈북자들이 북송되면 모두 처형당하는 줄 안다. 지난 2006년 탈북해 다음해 남한에 온 최경옥 교육사는 “남한 내 탈북자 가운데 절반은 한 번 이상 북송당한 경험이 있을 것”이라며 “기독교 선교사 등과 관련돼 정치적 의도가 분명한 경우가 아니라면 북송된 사람들은 대개 노동단련대 등에서 ‘교화’ 받은 뒤 풀려난다”고 설명했다. 한데 일부 보수언론들은 “북송된 탈북자들의 코를 철사로 꿰어 거리를 끌고 다녔다”는 식의 보도를 했다. 이런 보도가 계속되자 ‘북한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닌 곳→거기서 내려온 자들은 사람이 아니다(탈북자에 대한 편견)→북한과 왜 통일? 통일 비용만 든다’ 식의 논리로 이어졌다.
지난 7월14일 서울 광화문 한국협동학습연구회 사무실에서 열린 ‘다가오는 통일, 상상체험 통일교무실’ 간담회. 맨 앞줄 왼쪽부터 조창완 좋은교사운동 통일교육위원장, 배수연·박금주·최경옥·이정옥 통일전담교육사. 통일전담교육사 4명은 모두 북에서 교사로 근무했었다. 김태경 기자
조 교사는 간담회 도중 지난 2007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 찍은 동영상을 보여줬다. 남한에서 온 손님들을 위해 북한 당국이 준비한 특별무대였는데 소학교(초등학교) 5학년 정도로 보이는 남학생이 멀리서 날아오는 훌라후프를 머리 위쪽에서 받아 몸에 끼우는 장면이었다. 학생은 다 성공했지만 실수로 딱 한 번 훌라후프를 놓쳤다. 조 교사는 “이 학생은 총살당했을 거라는 게 남한 사람들의 반응”이라며 “북한이 로봇이 사는 사회인 줄 안다”고 지적했다. “저렇게 할 정도면 얼마나 혹독하게 훈련 받았을까, 불쌍하다”는 반응도 많다. 그러나 교육사들은 “북에서는 소조활동을 열심히 한다. 특히 저런 무대에 서는 건 개인에게 큰 영광이다. 따라서 죽도록 연습한다”고 말했다. 즉 훌라후프 묘기를 선뵌 학생은 ‘북한판 프로듀스48’에 나가는 심정이었다는 뜻이다.
박 교육사는 “현재 남한 사람들은 북한 하면 핵무기?가난?독재 등만 떠올리면서 꽤나 배타적”이라며 자신이 경남대 북한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을 때 들었던 강연을 소개했다. 동독 주재 북한대사관 직원으로 일했고, 통일 뒤에도 역시 독일 주재 북한대사관 직원으로 근무했던 한 독일인의 강연이었다. 그는 “동서독 통일 뒤 문제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서독 주민들은 동독 주민들에 대한 배타성이 적었다”며 “그러나 현재 남한 주민은 북한 주민에 대한 배타성이 강하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과제”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배수연 교육사는 북한에서 사로청(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지도원과 도덕·혁명 역사 교사를 지내다 2004년 탈북했다. 그는 “북한 정권이 나쁜 거지 북한 주민들이 나쁜 게 아니다. 한데 북한 정권에 대한 미움을 왜 북한 주민들에게 대입하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남한 내 통일교육의 문제점으로 통일성?일관성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배 교육사는 “남한에서 통일교육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북한에 대해 잘 모를 뿐 아니라 관련 기관들도 제각각이다. 심지어 기무사에서도 통일교육을 하는 걸로 알고 있다”며 “준비 안 된 사람들이 하니까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 고등학생은 통일 생각할 기회조차 없어
조 위원장은 “현재 중고등학교 통일교육은 심각하다. 초등학교 4학년·6학년에서, 중학교는 도덕과 윤리과목에서 통일교육을 다루는 정도”라며 “고등학교는 생활과 윤리 과목 마지막 단원에 통일이 나오는데, 수능에도 안 나오니 교사도 진도를 안 나간다. 고교생은 통일을 생각할 기회 자체가 없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미래의 교사를 양성하는 교대에서도 통일 관련 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그는 평화·민주시민 교육 관점에서 통일을 바라보는 것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찬성하지만 일부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 논리대로라면 한반도 평화정착, 남북공존이면 충분하지 “왜 굳이 통일은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충분히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의 ‘우리는 한민족’, ‘백두에서 한라까지 하나로’라는 구호가 감상적이지만 되레 통일의 절박성이 잘 드러난다.
간담회에 나온 이들이 통일전담교육사로 불리는 건, 교육부가 북한에서의 교사 경력은 인정하지만 남한 교사 자격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가 아니라 ‘교육사’가 됐으며 전국에 23명이 있다. 1999년 처음 탈북해 북송 3번 당했고 마지막으로 2002년 탈북, 2008년 남한에 들어온 이정옥 교육사는 “남북 실상을 잘 아는 우리 같은 인력을 정식 통일 관련 교사로 발령 내지 않는 게 너무 아쉽다”며 “남한 내 통일 관련 교육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정규 교육으로 넣어서 한 학기에 2~3번 정도라도 통일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태경 <함께하는 교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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