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샘과 함께 ‘자기방어훈련’
‘복도를 걷고 있는데 친구가 뒤에서 다가와 브래지어 끈을 잡아서 튕기고 도망갔다. 바로 그 순간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고 곧 화가 났다. 그런데 왜 이런 순간에 눈물이 흐르고 난리? 이런 나 자신이 너무나 싫다. 화가 날 때마다, 뭐라고 따끔하게 한마디 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때마다 아직 아무 행동도 못했는데 눈물부터 나버려 창피하다. 한층 더 억울한 마음이 들고, 이런 나 자신이 싫어진다.’
눈물은 감정이 아니다. 눈물은 감정에 따른 신체반응이다. 심장박동, 땀, 근육의 경련, 얼굴로 몰려드는 뜨거운 기운처럼, 눈물은 내가 선택한 행동이 아니라 감정에 따라 몸에서 일어난 반응이다. 그리고 눈물은 기쁨과 충만감, 슬픔과 분노, 수치심과 두려움 그 어떤 감정에도 따라올 수 있는 신체반응이다. 천천히 호흡하면서 감정의 크기를 조절하고 방향을 다시 잡지 않는 이상, 신체반응을 마음처럼 누그러뜨릴 수는 없다.
흔히 여성이 남성보다 더 ‘감정적’이라고들 말한다. 성차별적인 사회에서는 감정에도 성별이 있다. 특히 분노라는 감정이 그렇다. 여성에게는 대부분 감정이 허용되지만 ‘분노’만은 여자답지 못하다고 여긴다. 반면 남성은 여성보다 감정표현을 덜 할수록 남자답다고 여기지만, 분노만은 예외다.
치마를 들치고 브래지어 끈을 당기는 공격을 받았을 때 화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 공격을 받은 여자아이들이 분노에 걸맞게 크게 소리 지르거나 욕을 하는 식으로 대응했을 때, 그런 행동들은 좀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더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행동은, 그냥 우는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소리치고 욕하기보다 눈물을 흘릴 때 내 말이 상대에게 더 쉽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해왔다. 여성의 눈물에는 보상이 있어왔던 것. 이런 사회에서 자라온 여성들이 화가 났을 때 눈물부터 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을까. 그런데 공격을 받고 눈물 흘리는 여자아이에게 왜 똑바로 말을 못하냐고 다그치거나, 심지어 눈물을 이용해서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려고 한다며 `영악하다’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게 아니라고, 나도 똑바로 말을 하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소리치지만, 흐르는 눈물을 막을 재간이 없다.
이제 어떻게 할까. 공격을 받았는데 눈물부터 난다면, 눈물을 땀처럼 생각해버리자. 공격을 받아 눈물을 흘리는 친구를 보면, 달려가서 위로부터 하기보다는 손수건을 건네주고 숨을 고를 수 있도록 조금 기다려주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든 주장을 하는 사람이든 경청으로 화답해보자. 진지한 환경에서는 자기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드러난다. 우리 모두에게는 분명히 그런 힘이 있다. 땀이 많은 체질인 사람은 땀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다. 땀이 나면 닦으면 그만이다. 눈물이 흐르는 자신을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은 눈물이 잘 멈추지도 않는다. 나는 눈물이 많은 체질이야. 중요한 건 눈물이 아니라 지금 내가 화가 났다는 거라고. 눈물이 흐르든 말든 하고 싶은 말과 행동에 집중하는 것이다.
문미정(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강사,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우리학교) 지은이(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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