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신이의 발자취] 교육운동가 오성숙님을 추모하며
오 회장님~, 당신을 떠올리니 민들레 홀씨가 생각납니다. 미풍에도 쉬이 날아가는 가벼운 씨앗이지만, 단단한 대지에 힘차게 뿌리내리며 새 생명을 품어내는 그 씨앗 말입니다. 회장님의 교육운동에 대한 열정은 민들레 씨앗이 대지에 뿌리내리 듯, 시끄럽지 않게 조용히 날아들어 우리 후배들 가슴 속에 ‘학부모운동’이라는 생명의 싹을 틔웠습니다.
제가 회장님께 이렇게 여쭈었던 적이 있습니다. “회장님은 자녀도 다 키우고 나이도 많으신데 여전히 학부모 같아요. 그 연세가 되면 ‘학부모라는 정체성’ 던져 버리고 싶지 않으세요?” 당신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학부모라는 이름으로 교육운동을 하면서 외쳤던 그 수많은 교육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내 아이가 학교를 졸업했다고 학부모라는 정체성을 쉽게 내던질 수는 없지요, 우리 교육현장에 참교육이 공기처럼 스며들면 그 때는 다른 정체성을 생각해 볼게요.”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학부모’라는 이름에 덧씌워진 괴물 같은 이미지가 버거워서 이제 그만 ‘학부모운동’ 접고 싶어서 여쭈었던 거였는데, 회장님은 오히려 제 머릿속을 흐트려 놓았으니까요. 흐트러진 그 머릿속이 아직 정리가 안 되어 여전히 헤매고 있는데, 뭐가 그리 급하셔서 홀로 그리 황망하게 가셨는지요?
‘오 회장님~’ 부르면 “어여와요”, 여전히 조용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자리를 내어주실 것 같은데 옆에서 뵐 수 없다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옵니다. 학부모운동을 하는 선배로, 때로는 동지로 그렇게 후배들 가슴에 깊숙이 파고들어 놓고 홀로 가시다니요. 원망도 해봅니다. 앞으로 저희 후배들은, ‘오 회장님~’ 그 정겨운 이름을 어디에 대고 불러야 하나요! 일하다 힘들면 애프터서비스(A/S) 해달라 투정이라도 부려야 속이 풀릴 텐데 그 기회를 이리 일찍 앗아가 버리시다니 야속하기만 합니다.
오 회장님~, 얼마 전 제가 회의하러 교육청에 갔다가 일하시는 사무실에 들렀을 때 기억하시나요? 시간되면 저녁 먹고 가라 붙잡으셨습니다. 그때 저녁 먹으며 회장님과 속깊은 얘기를 나눴어야 했는데, 아니 활동하기 힘드니 ‘에이/에스’ 해달라 투정이라도 실컷 부렸어야 했는데, 그리했더라면 우리 회장님, 힘들어하는 후배 돌아보느라 저승길 이리 쉽게 나서지는 못하셨을 텐데, 뭐가 그리 바쁘다고 잡아주시던 그 손을 뿌리쳤는지 두고두고 후회가 됩니다.
오 회장님~, 저희 후배들은 회장님을 보내드리지 않으렵니다. 추억으로, 기억으로 우리 가슴 속에 꽁꽁 묶어 두려합니다. 힘들면 언제든 불러내서 참교육학부모회 앞날에 때로는 회초리로, 때로는 당근으로 활용할 것입니다.
오 회장님~, 오 회장님~, 민들레 씨앗처럼 우리 곁에 조용히 와주셔요. 회장님이 그토록 열정을 쏟았던 학부모 교육운동, 그토록 지켜내고자 했던 아이들의 웃음 띤 얼굴과 아이들의 꿈, 저희가 지켜나가겠습니다. 영면하소서.
나명주/참교육을위한학부모회 수석부회장
지난 10일 서울 원자력병원에서 고 오성숙 전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회장 추모제가 열렸다.
연재가신이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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