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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초등 교실에 필요한 건 ‘역지사지’ 젠더 상상력③

등록 2019-02-20 10:44

초등 교실 속 ‘젠더 이해 수업’에서는 아이들 각자의 생각과 이야기가 넘쳐난다. 아이들에겐 자신이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할 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은 욕구가 있다.

교실에서 수다 떨듯 편하게 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자, 아이들은 평소 생각해온 성별 불평등, 고정관념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여자 혹은 남자라서 실제로 불편한 점을 적은 다음, 돌아다니면서 친구의 의견을 호기심 있게 살펴보며 궁금한 점이나 반박할 말들을 자유롭게 나누었다. 공감하거나 티격태격하기도 했으며, 자신 안의 편견을 확인하고 반성하기도 했다.

“명절 때 엄마들만 일하는 거 보면 정말 답답해. 오빠나 남동생은 놀게 놔두고 여자인 나에게만 ‘미리 집안일을 배워두라’고 하는 것도 싫어.”

“섹시하다는 말 불편해. 여리여리해야 될 거 같고 뚱뚱하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이 날 힘들게 해.”

“어떤 자극으로 발기되면 너무 불편해. 야한 생각을 해서 그렇게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여학생이 키가 큰 경우 크다고 놀리는 게 이해가 안 돼. 남자든 여자든 키가 크고 작은 건 그 사람의 특징일 뿐이야.”

아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표정이 밝아진다. 이 과정이 없었으면 오해가 더 쌓였을 텐데,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즉각적인 피드백을 주고받으니 관계가 더 돈독해졌다. 편견과 오해가 쌓이기 전에 풀어내기, 이게 바로 이 수업의 핵심이었다.

아이들의 솔직한 대화를 보면서 오히려 어른들에게 이런 기회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믿을 수 있는 타인과 터놓고 직접 대화를 나누며 생각을 발전시켜나가는 경험이 부족한 채로 갈등하고 있진 않는가? 갈등 자체를 나쁘게 보진 않는다. 오히려 사회를 정화할 수 있는 건강한 신호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가 젠더 이슈를 피곤하게 생각한다. 한데 12년 과정의 공교육 현장에서든 사회 속에서든 우리에겐 애초에 이런 대화 기회조차 없었다.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해본 적 없으니 서툴고 뾰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교실 속 작은 젠더 수업들을 통해 아이들 세대는 우리 세대보다 ‘건강한 사회를 위한 갈등’의 과정이 좀 더 쉬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업 한번으로 오해와 고정관념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게 됐다.

“여자가 화장 안 하면, 또는 남자가 화장하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니?” “남자에게 군대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꼭 군대가 있어야 할까? 하지만 중요한 건, 군대는 여자가 가라고 한 게 아니라 나라가 보내는 것이다.”

수업 뒤 아이들이 적어 낸 글을 보고 있으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이 아이들 손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아 자꾸 기대하게 된다.

황고운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교사, <예민함을 가르칩니다>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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