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용샘의 ’학교도서관에서 생긴 일’】
매주 금요일 점심시간이 되면 학교 주차장에 돗자리를 펼치는 소녀들이 있습니다. 중간고사가 있는 금요일 점심에도 변함없었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이면 비, 바람,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길 뿐입니다. 돗자리 위의 소녀들은 스스로를 ‘까독회’라고 말합니다.
까독회는 ‘까치 독서회’ 또는 ‘까마귀 독서회’의 줄임말입니다. 긍정적인 감정이 함께할 때는 까치,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까마귀라고 하더군요. 그들은 왜 금요일 점심시간에 책을 들고 모일까요?
네 명의 소녀는 광양백운고등학교 3학년 학생입니다. 그들은 시가 좋아서 모인다고 하네요. 다사로운 햇볕 아래, 시집 한 장 넘기는 소리에 귀가 열리고 시집에서 흘러나오는 따스하면서도 냉철한 목소리에 마음이 콩닥거리는 소녀들입니다. 시 한 줄에 웃고, 문장 한 줄에 눈물짓는 대한민국의 고3 수험생이라니. 썩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생각하는 것은 비단 저만은 아니겠지요?
첫 모임은 고3이 된 뒤 한 달이 지날 즈음이었습니다. 고3이라는 말만으로도 짓눌리는 압박감에서 해방되고 싶었고, 그 순간을 함께하고 싶은 친구들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친구 넷이 모여 고3 스트레스를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마음에 공감하고, 현재 또한 즐겁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해방구로 선택한 것이 시집이에요. 금요일 되기 전에 선생님이 계신 도서관에서 매번 시집을 골랐잖아요? 그렇게 고른 책에서 마음에 드는 시를 친구와 읽고 나눠요.” 진로가 국문과나 문예창작학과인지, 예전부터 책과 시를 좋아했는지 묻는 질문에 네 명 모두 고개를 모로 젓습니다.
“그냥 우리끼리 하는 작은 모임이고, 생활기록부와는 전혀 상관없어요. 작년에 학교도서관에서 선생님이랑 ‘북 카페’ 수업했잖아요.(이 수업이 궁금하신 분은 지난해 12월18일자 칼럼을 참고하세요.) 매주 자유롭게 독서할 수 있게 해주셨을 때 책의 매력을 느꼈어요. 그때부터 시집도 찾아 읽었고요.”
한 친구가 이야기를 보탭니다. “처음 모였을 때 돗자리가 너무 작아서 불편했는데, 체육 선생님이 큰 돗자리를 빌려주셔서 이젠 금요일마다 체육 선생님부터 찾아뵙고 시작해요. 가끔 간식도 주시는 유행규 선생님께 감사의 시를 적어 보낸 적도 있어요.”
4월 어느 날 시작된 까독회. 이들은 시집이 모여 있는 학교도서관 서가 사이를 서성이면서 매주 7~8권의 시집을 빌려 갔습니다. 특정 시집의 위치를 묻기도 했고, 찾지 못한 시집의 위치를 알려주면 금세 환하게 웃더군요. 비밀 독서회를 한다면서 살짝 정보를 흘리는 귀여운 모습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비밀 독서회라고 말하지만, 까독회를 소개하는 글에는 적극적입니다.
이 친구들은 시집만 읽는 게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상황, 감정을 시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자작시는 얼마 전 전남 광양시에서 열린 ‘전국 창작시 공모전’에서 고등부 3위에 입상했습니다. 입상보다 반가웠던 것은, 도서관에 붙어 있는 공모전 포스터를 보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학생들이 있었다는 점이지요. 그 학생들이 바로 까독회 소녀들이었고요.
수많은 공모전 포스터가 학교로 옵니다. 모든 대회에 참가하라고 권하기는 어려워, 게시판에 가만히 붙여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포스터가 참가자들을 기다리다가 쓰레기통에 버려집니다. 한데 시를 읽는 친구들이라 그런지 주변을 관찰하는 눈이, 사람들에게 관심받지 못하는 작은 것들을 보는 눈이 생겼나 봅니다.
대한민국 입시라는 현실 앞에 ‘한눈파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긴 여행에서, 10대 시절 함께 모여 시를 읽고 마음을 나누는 일이 참 건강하고 행복해 보입니다. 또 다른 ‘까독회’ 모임이 많이 생겨서 학교 주차장에 차를 세울 공간이 부족했으면 좋겠습니다.
황왕용 광양백운고등학교 사서교사, <학교도서관 활용 수업: 중·고등> 공저자
‘까독회’ 학생들이 학교 주차장에서 시를 읽은 뒤 소감을 나누고 있다. 왼쪽 윗줄부터 시계 방향으로 3학년 이지나, 김민주, 조현서, 정혜수 학생. 오선아 광양백운고 교사 제공
황왕용 광양백운고등학교 사서교사, <학교도서관 활용 수업: 중·고등> 공저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