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한국외대 오마바홀에서 진행된 `2020학년도 통번역대학원' 석사과정 입학설명회의 모습이다. 이 통번역대학원에서는 지난해 9월 한 교수가 대학원생이 강의 평가에서 점수를 낮게 줬다는 이유로 학생을 공개 면박을 주어 논란이 됐다. 사진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누리집 갈무리.
“이것은 ‘배울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이 교수는 엉망진창이다’라는 것 아닌가요? 평가(점수)에서 1 이나 2 준다는 것은 그런 의미 아닌가요?”
“저는 악의도 없었고 …(중략) 제 생각대로 표기한 겁니다. 다른 학생처럼 4나 5를 하지 않았다고 이렇게… 따로 저를 불러서 얘기하지 않고 수업 시간에…”
“따로 부를 마음 없습니다.…(중략) 방법은 하나예요. 김보람(가명)이 수업에 안들어오든지 내가 안들어오든지 둘 중 하나예요.”
지난해 9월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의 한 수업에서 벌어진 일이다. “내 얼굴을 쳐다보며 화를 내는” ㅇ교수에게 대학원생 김보람씨(가명)는 교수가 지목하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수업시간 45분간 내내 이어진 추궁에서 교수는 “처음부터 무례했다” 며 언성을 높였다. 그 과목은 전공 필수였지만, 김씨는 결국 “제가 수업에 안나오겠다”고 답했다. ㅇ교수는 이날 화를 내고 교실을 나갔다.
ㅇ교수가 다른 교수와 담당 과목을 바꿔 김씨는 전공 필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힘든 시간은 오래 이어졌다. 김씨는 “교수가 수업에 30분씩 늦었던 경우가 있어 해당 항목에 낮은 점수를 주었다”며 “공정성을 위해 익명으로 강의 평가를 하는데 이렇게 색출해 공개적으로 모욕감을 준 것은 인권 침해이자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ㅇ교수는 이와 관련해 “그동안 김보람 학생의 수업 태도가 좋지 않아 수업 분위기가 흐려졌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학생과 다른 점수의 강의 평가를 보니 학생이 나를 무시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해명했다. 김씨는 ㅇ교수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문제가 된 학기중에는 결석이나 지각을 한 적도 없고 숙제를 성실히 했다”며 “수업 태도가 좋지 않았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은 대부분 학과가 10명 이내로 운영된다.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밀착된 편이고, 교수가 같은 과 선배인 경우가 대다수여서 조직문화도 폐쇄적인 면이 있다. 김씨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한 이소라(가명)씨는 “춘계학술대회에서 학생들이 교수들 앞에서 춤이나 노래 등을 선보이며 장기자랑을 해야한다”며 “안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고 전했다. 학생이 워낙 소수이다보니 행사에서 빠지게 되면 분위기를 흐리는 학생으로 지목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씨는 졸업시험 문제도 제기했다. 그는 “졸업 시험을 치르면 무조건 학생의 40%는 떨어지는데, 왜 떨어졌는지 설명은 물론 이의제기 신청 절차도 없다”고 말했다. 총 10과목으로 구성된 졸업 시험에 불합격한 김씨는 다시 졸업시험을 치려면 과목당 3~6만원씩 추가 비용이 드는데다 공정한 평가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문제는 대학원에 이런 문제를 제기할 창구가 없다는 것이다. 당시 일에 대해 학교 쪽은 “교수가 잘못한 것은 맞다”면서도 “학생이 공식적으로 학교에 문제제기를 한 것이 아니라 공식 조사 절차는 밟지 않았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외대 쪽은 “상담센터나 교학처를 통해 이의제기를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김씨는 “사건 발생 직후 학교에 문의했지만 ‘고충 접수 창구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대학 인권센터가 문제를 풀어갈 대안으로 꼽힌다. 지도교수와 대학원생들 사이에 수직적 권력관계가 강한 대학원에서 인권센터는 더욱 절실하다. 2010년대 중반 ‘교수 갑질’ 등에 시달리는 대학원생의 인권 문제가 대두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을 권고하면서 인권센터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2019년 3월까지 대학 50여곳에 인권센터가 세워졌지만 한국외대에는 없다. 한국외대 관계자는 “대학 재정 부족으로 상담센터조차 제대로 운영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상담센터가 충분히 그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만 답했다. 졸업 시험 이의 제기 절차와 관련해서는 통번역대학원 교학처 관계자는 “대학원 원장님에게 이의제기 필요성에 대해 보고했다”며 “2학기 전체 교수 회의를 열어 불합격 사유 설명과 공식 이의 제기 절차가 필요한지 논의해보기로 했다”고 전했다.
양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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