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14 09:55
수정 : 2019.11.14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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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활동가 난다(왼쪽)씨와 공현(31)씨. 난다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공현씨는 서울대 3학년 재학 때 각각 학교를 자퇴하고 2011년 대입 거부 선언에 나섰다. 사진 투명가방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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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비진학자들의 모임 ‘투명가방끈’ 활동가 난다·공현 인터뷰
줄 세우기 무한경쟁교육과 학력·학벌 차별에 반대하며
2011년부터 매년 수능 당일 대입 거부 선언…올해로 9년째
“교육이 경쟁 통해 상승하는 과정이라는 믿음 너무 강해…
줄 세우기 자체를 근본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정책 추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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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활동가 난다(왼쪽)씨와 공현(31)씨. 난다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공현씨는 서울대 3학년 재학 때 각각 학교를 자퇴하고 2011년 대입 거부 선언에 나섰다. 사진 투명가방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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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하게 홍보를 하는 것도 아닌데 매해 대학 입시 거부자들이 알아서 찾아와요. 만나서 이야길 들어보면 사연이 다른 듯 비슷해요. 한국 교육이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뜻이죠.”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투명가방끈) 활동가 난다(28)씨가 말했다. 투명가방끈은 줄 세우기 무한경쟁교육과 학력·학벌 차별, 모든 사람이 대학에 가야 한다는 편견에 반대하며 2011년부터 매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당일 대입 거부 선언을 해왔다. 특히 올해 수능날인 14일에는 거부 선언 뒤 ‘공정한 입시제도는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도 연다. 난다씨와 함께 투명가방끈에서 활동하는 공현(31)씨는 “수능 당일 토론회를 여는 건 처음”이라며 “조국 사태 이후 정부가 교육 문제를 정시 확대 등 입시 정책 위주로 가져가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2011년 대입 거부 선언에 나섰던 난다씨와 공현씨를 포함해 지난해까지 모두 75명이 ‘다른 길’을 택했고, 올해도 6명이 이날 대입 거부 선언을 한다.
어느새 100명을 향해가는 대입 거부자들에게는 개별적 삶을 뛰어넘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경쟁을 기본으로 깔고 가는 한국 교육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어요. 학교가 경쟁의 낙오자는 버리고 가버리니까요. 다들 차별당한 경험도 있어요. 학력 차별이 20대 이후에만 벌어지는 건 아니에요. 청소년들이 겪는 가장 대표적인 차별이 성적 결과에 따른 차별인데 문제는 이게 너무 일상적이라는 거예요”(난다)
특히 올해 대입 거부자들 가운데는 19살(고3)뿐만 아니라 20대도 많이 있단다. 공현씨는 “20대들은 사전 모임에 나와 고등학생 때 대학만 가면 더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대학 진학 뒤에 환상이 깨졌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공현씨 역시 서울대 3학년 재학 도중 자퇴서를 냈다. “왜 그만두고 싶었냐기보다는 다닐 필요를 찾지 못했어요. 청소년 운동을 계속할 생각이었는데 대학 졸업장이 크게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어요. 대학 서열화와 학벌주의에 대한 고민도 계속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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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15일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관계자들이 2018 대학입시거부선언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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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거부자들의 눈에 현재 입시제도를 둘러싼 논란은 어떻게 비칠까. 공현씨는 “지금 말하는 공정성은 교육의 공정성이라기보다 입시경쟁의 공정성”이라며 “한국 사회에는 교육이 경쟁을 통해 상승하는 과정이라는 믿음이 너무 강하다”고 지적했다. 난다씨는 “정시든 수시든 지금과 같은 입시제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라며 “대학 서열화, 줄 세우기 경쟁을 바꾸지 않는 한 학생들이 고통받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시 비중 확대를 둘러싸고 교육계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가 시끄럽지만, 대입 거부자들은 완전히 다른 세상을 꿈꾼다. 공현씨는 “투명가방끈의 목표는 대학 가는 게 의무처럼 되지 않고, 대학 안 간다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입 거부자, 고졸 노동자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난다씨는 “하다못해 카페 아르바이트생을 뽑을 때도 학력 무관이라고 해서 갔더니 대졸, 대학 휴학생만 받는다고 했다”고 말했다.
편견의 벽도 높다. 공현씨는 “대학 거부자들에 대한 가장 큰 편견이 공부 못해서 그러는 거 아니냐는 것이다. 대학 거부도 좋은 조건을 갖춰야만 할 수 있고 그게 아니면 변명이라고 생각하는, 이런 세계관을 돌파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렵다”고 털어놨다. 대졸과 그 이하의 학력은 지원할 수 있는 일자리 종류가 다르고 월급 앞자리 숫자가 달라지는 현실도 버겁기는 마찬가지다. 공현씨는 “대통령은 정시 비중 확대와 같은 입시제도 개편이 아니라 대학 평준화와 같은 줄 세우기 자체를 근본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이면 대학 거부 선언이 10년째를 맞는다. 언제까지 이어지게 될까. 난다씨는 “입시 위주, 경쟁 위주의 교육이 존재하는 한 투명가방끈 활동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거부 선언은 선언으로 그치지 않는다. 인생을 관통하는 과정이다. 공현씨는 “대학 거부 선언은 스스로를 차별받는 위치에 세우고 학벌 문제의 당사자가 되는 운동입니다. 본인 삶의 문제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고민하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요.”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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