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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8 19:56 수정 : 2019.11.19 14:57

레고 작가 겸 교육자 노정주씨
어렸을 적 레고 장난감 추억 살려
대학 가서 알바하며 취미 본격화
끝내 외로운 작가의 길로 들어서

이젠 청소년들 대상 교육에 집중
움직이거나 그림 그리는 로봇 제작
놀이도 하고 창의력도 키우고

레고 작가 노정주씨가 지난 8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작업실에서 자신이 만든 그림 그리는 레고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다. 김학준 선임기자

“레고는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가지고 놀았을 추억의 장난감이다. 지금도 아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레고는 어떻게 조립하느냐에 따라 자동차 또는 비행기가 되거나, 성이나 도시가 되기도 한다. 독창성과 예술성이 더해지면 작품이 되기도 한다. 레고가 나온 지 8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어린이에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가장 사랑받는 장난감이 된 이유가 아닐까?”

노정주 작가가 지난해 11월 다음세대재단의 ‘유스 보이스’ 프로그램 지원으로 서울 영등포구 복합모임공간 끈에서 어린이들을 상대로 레고 교육을 하고 있다. 노정주 작가 제공

지난 12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창작촌으로 노정주 레고 작가를 찾아갔다. 지하철 2호선 문래역에서 내려 알려준 주소를 가지고 골목길을 더듬어 나갔다. 수십년 동안 소형 공장지대로 이용돼왔기 때문인지 아직도 작고 낡은 공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골목길은 작은 화물트럭이 간신히 지날 정도로 좁은 곳도 많았다. 공장이나 작업실이 다 고만고만해서 길눈이 웬만큼 밝지 않으면 뺑뺑이 돌기 일쑤일 것 같았다.

다행히 노 작가의 작업실은 문래공원교차로에 가까이 위치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간판이 없고 작업실의 특징조차 없어 창작촌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그냥 지나칠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스테인리스로 보이는 철판으로 만든 테이블과 싱크대가 있고 커피 내리는 기계가 설치돼 있었다. 선반 위에는 레고 작품 몇개가 놓여 있다. 공구와 기계들도 보이고 나무 등 재료들도 어지러이 놓여 있어 공방으로 보기 십상이다. 주인장인 노 작가는 카페라고 불렀다.

노 작가가 본격적으로 레고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미대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아르바이트로 돈이 좀 모이자 레고에 눈을 돌렸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지만 갖지 못해 억눌려 있던 욕망이 터져 나온 것이랄까.

“2001년쯤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스타워즈’ 시리즈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딱 필이 꽂혔죠.” 그 ‘스타워즈’ 시리즈를 지금 아이들 교육에도 쓰고 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외로운 길이 시작된 것이다. 레고 작가라는 직업으로 돈을 만드는 길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거나 새로운 레고 작품을 개발해내는 것만이 살길이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 경우 레고 회사의 인정을 받아 제품으로 만들 수 있고, 매뉴얼을 만들어 팔 수도 있다. 레고의 경우 부품별 번호가 잘 매겨져 있어 번호만 알면 중고든 새것이든 쉽게 구할 수 있다. 애호가들이 부품을 구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2018년 8~10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노정주 작가의 작업실에서 진행한 ‘유스 보이스’ 교육 프로젝트에서 학생들이 레고를 만들고 있다. 노정주 작가 제공

문래동에 온 지 올해 9년차에 접어든 노 작가는 2014년 문래동 창작촌 꾸미기에 나섰다. 주변의 낡고 균열이 생긴 벽들을 형형색색 레고 브릭으로 메우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일대를 특색 있는 명소로 자리매김하는 데 이바지했다. 예술촌도 꾸미고 레고를 알리자는 목적이었다. 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 때의 총탄 흔적을 예술작품으로 보수한 전례를 따른 것이다. 그 이후에도 다양한 예술촌 꾸미기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노 작가는 2013년부터 움직이는 레고와 그림 그리는 레고 등 창작품을 잇달아 만들어내고 있다. 컴퓨터가 달려 있어 명령어만 입력하면 다양한 움직임을 유도할 수 있다. 아직 그림이 세밀하지는 않고, 레고가 물감을 뿌리거나 움직이는 레고가 물감을 화선지에 다시 퍼트려서 그림을 완성하는 정도다. 그는 공학도가 아니어서 접근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레고의 레퍼런스가 많아 아이디어만 좋으면 창작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작품은 움직이는 레고 외에도 자신의 작업실을 레고로 재현한 작품, 사진작가 친구가 이탈리아에서 찍어온 사진을 레고로 만든 작품 등도 있다.

노 작가는 최근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레고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8월엔 다음세대재단의 ‘유스 보이스’의 후원으로 자신의 작업실에서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레고 놀이 체험시간을 가졌다. 작가로서 일만 하다 교육자의 길로 나선 것이다. 레고 작가로서의 한계 탓에 생계를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연초부터 여러 달 준비를 꼼꼼히 한 뒤에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갔다. 정해진 두달 동안 매주 한번씩 모임을 했다. 그림을 보고 어떤 모형을 그대로 조립하는 단계를 넘어서 창의적인 시도를 했다. 코딩을 도입해 그림을 그리는 레고를 만드는 과정이다. 노 작가가 평소에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레고에서 파는 제품과 매뉴얼을 넘어서 새로운 작품을 창작해내는 것이다. 그는 직접 만들어 보이면서 아이들에게 도전 의식을 일깨웠다. 선생님이라기보다는 동네 형 같은 그의 모습에 아이들은 모처럼 학원이나 학교의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껏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기회를 가졌다. 몇번 연습하더니 아이들도 쉽게 움직이는 레고 로봇을 만들어냈다.

2018년 8~10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노정주 작가의 작업실에서 진행한 ‘유스 보이스’ 교육 프로젝트에서 학생들이 만든 그림 그리는 레고의 모습. 노정주 작가 제공

그는 올해엔 ‘유스 보이스’의 후원을 받는 데는 성공했으나 아이들을 모집하는 데는 실패했다. 중학생이 되면 초등학생 때와 달리 공부에 대한 부모들의 압박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중학생이 놀기만 하면 되겠느냐”는 말을 듣기 일쑤다. 너무 공부에만 목매는 부모들이 안타깝다. “매뉴얼을 보고 레고 작품을 조립해보는 것만으로도 창의적이다. 매뉴얼을 보지 않고 다른 것을 만들어보면 성취감이 더 커진다. 물론 창의성은 당연히 따라온다.”

노 작가는 최근 작업실을 카페로 꾸몄다. 사랑방이나 살롱 구실을 하기 위해서다. 간판도 필요 없다. 작가들이 알아서 찾아오기 때문이다. 문래동에서 만나는 작가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예술 얘기도 하고 살아가는 얘기도 한다. 당분간은 레고 작업은 밤에만 할 작정이다.

최근 그에게 경사가 생겼다. 레고 그룹에서 ‘리빌드 더 월드’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창의적인 영감을 주기 위해 유명 뮤지션, 운동선수 등과 인터뷰 등을 하는 것이다. 그는 레고코리아로부터 레고를 활용한 창의적인 활동과 작품으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로 선정됐다. 편견에 도전하는 시각장애인 크리에이터 마누사마 김민우씨, 독학으로 레고 창작 스톱모션 영상을 제작하는 고등학생 창작가 고성진군 등과 함께 뽑혔다.

“아직 작가라고 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다. 작품도 많이 만들지 못했고…. 미국에서 한 어린이가 레고로 점자 프린터를 개발하기도 했다. 기존에 수천만원 하던 것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레고에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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