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30 20:00
수정 : 2019.12.31 02:37
연재ㅣ연탄샘의 십대들 마음 읽기
중학교 2학년인 지영이(가명)는 결석 일수가 너무 많아 학업중단 숙려기간 동안 상담을 받기로 한 학생이었다. 아이가 결석하는 이유는 “아침에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계속 잠만 자고 싶고, 하고 싶은 일도 재미있는 일도 전혀 없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지영이의 종합심리검사 결과를 살펴보니, 부모에 대한 적대감과 불신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영이에게 엄마 아빠에 관해 물어보았다. 아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엄마 아빠한테 칭찬받아 본 적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부모로부터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다니, 아이의 기억이 맞을까. 지영이는 엄마 아빠의 기준에 맞추려면 얼마나 더 잘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느 순간 이도 저도 싫고 포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한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유행어가 될 정도로, 칭찬의 긍정적 효과는 육아의 상식이 되었다. 전통적인 부모세대와는 달리 요즘 부모들은 칭찬하는 데 적극적이고, 자녀가 어릴수록 사소한 것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한데 아이들이 까칠해지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부터 부모들은 조금씩 칭찬에 인색해지는 경향이 있다. 어린 자녀를 양육할 때에 비해서 이제 다 커버린 청소년기 자녀들에게는 칭찬의 효용성이 그리 크지 않다고 느끼는 것 같다.
게다가 칭찬을 하는 상황도 한정적이 된다. 아이들이 시험을 잘 봤을 때나 학교에서 상을 탔을 때, 임원으로 선출됐을 때 등 부모들이 바라는 행동이나 성과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칭찬한다.
살면서 한 번도 칭찬을 하지 않은 부모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지영이처럼 기억 속에 자신을 칭찬했던 부모의 모습이 없다는 것은, 이런 ‘선택적 칭찬’ 때문이 아니었을까. 또 어쩌면 아이가 기대했던 진심 어린 칭찬이 아니라 “그래, 잘했네” 식의 성의 없는 칭찬이었을지도 모른다.
우울증으로 상담했던 한 40대 여성은 부모에게 자신은 평생 ‘허세의 도구’였다고 이야기했다. 부모에게서 한 번도 진심 어린 인정과 수용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부모들의 선택적 칭찬은 자녀들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처럼 상처로 기억되곤 한다.
그렇다면 사춘기 자녀들에게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은 언제, 어떤 경우에 하면 좋을까. 부모가 원할 때가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상황에서 칭찬을 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어떤 성취나 좋은 결과에 대해서만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위로가 되거나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상황에서 칭찬을 해주었으면 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다. 별 탈 없이 생활하고 건강하게 한 해를 보내준 아이들에게 “올 한 해 정말 수고했다”라고 진심으로 칭찬해 주자. 그리고 한번 꼭 안아주는 것도 잊지 말자.
이정희 ㅣ 청소년상담사·전문상담사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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