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예술의 전당 '1101 어린이 라운지'에서 보호자와 어린이들이 예술 놀이 체험을 해보고 있다. '1101 어린이 라운지'는 프랑스의 창의 예술가인 에르베 튈레 작가가 기획한 공간이다. 김지윤 기자
“한국에는 왜 이렇게 노키즈존이 많아?”
얼마 전 기자가 독일인 친구에게 들은 말이다. 음식점부터 문화·예술 공간, 전시회까지 ‘어린이 출입 금지’라고 대놓고 써놓은 곳이 왜 이렇게 많이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출생률을 높이려는 나라에서 참 아이러니한 현상이라고도 했다.
환대(歡待). ‘기쁠 환’에 ‘기다릴 대’ 자를 쓴다.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한다는 뜻이다. 반의어로는 괄대, 푸대접 등이 있다. 한국에서 어린이는 환대보다는 괄대를 받는다. 보호자들이 카페나 음식점 등에서 아기 의자라도 찾으려 하면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을 견뎌야만 한다. 어릴 적 느껴보는 환대의 경험이 공동체의 시민으로 자라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르니 생기는 일이다.
지난 1월21일 서울 예술의 전당 1101 어린이 라운지에서 예술 놀이를 체험해보고 있는 보호자와 어린이들. 김지윤 기자
■ 돌봄과 예술 교육을 함께하는 공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뉴스가 없었던 지난 1월21일 오후. 기자는 서울 서초구에 있는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예술의 전당 주 출입구인 비타민 스테이션에 영·유아 예술 문화 체험 공간인 ‘1101 어린이 라운지’(이하 어린이 라운지)가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어린이 라운지에 들어서니 시끌벅적 자유롭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1101은 1살부터 즐긴 예술이 101살까지 이어진다는 뜻으로 ‘아트센터이다’가 위탁받아 운영한다. 어린이 라운지는 프랑스의 유명 동화작가이자 창의 예술가인 에르베 튈레(62)가 기획·개발했다. 다양한 예술 체험과 놀이를 결합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보호자들이 공연과 전시를 관람할 때 아이들을 맡길 수도 있다. 보호자가 공연과 전시를 즐기는 동안 ‘오케이키즈존’인 어린이 라운지에서 아이들도 자유롭게 뛰어놀며 예술 작품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1월21일 서울 예술의 전당 1101 어린이 라운지. 김지윤 기자
어린이 라운지에서는 에르베 튈레가 개발에 참여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상시 운영 프로그램으로 △창의성과 재미를 더한 놀이 △오감으로 감상하는 체험 전시 △창의 예술 작품 만들기 △세계적인 작가의 그림책이 있는 창의쑥쑥큐브 △뮤지컬·음악회·인형극 등을 감상하는 미니 극장 등이 열리고 특별 프로그램으로 ‘에르베 튈레와 강예나의 발레 여행’도 마련됐다.
에르베 튈레는 어린이에게 내재하는 미적 감각과 예술성을 오감 놀이를 활용해 끌어내고 다양성·창조성·예술성·유희성을 이미지로 전달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대표작으로 손가락 모험 놀이, 시골 놀이, 빛 놀이, 색색깔깔 놀이 등이 있으며 2009년과 2018년에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했다.
어린이 라운지는 0살부터 7살까지의 영·유아와 어린이를 대상으로, 출산을 준비하는 예비 부모를 위한 가족 프로그램 및 예술 체험과 놀이를 결합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또한 예술의 전당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기획 전시와 강좌, 기획 공연을 연계해 차별화된 예술 체험 행사를 진행하여 예술의 전당을 방문하는 누구나 해당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어린이 라운지는 1천여㎡(약 300평)의 공간에 120명 정도의 아이들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고 운영 인력은 20여명이다. 과거 예술의 전당이 운영했던 키즈 라운지와는 달리 36개월 미만의 유아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특징이다. 공연 관람객에 한해 제공되던 서비스는 전시 관람객까지 이용 대상이 확대됐다.
아트센터이다의 케이 리아오 이사는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물론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보호자들이 있다. 이는 예술 놀이를 통해 해소할 수 있다”며 “어린이 라운지는 돌봄 기능도 있지만 가족들의 대화를 유도하기 위해 젊은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예술 놀이를 하면서 유대를 강화하는 두가지 목표를 추구한다”고 전했다.
지난 1월21일 서울 예술의 전당 1101 어린이 라운지를 체험해보기 위해 광주광역시에서 올라온 박다혜 씨와 조하윤 어린이. 김지윤 기자
■ 비수도권 지역에도 있었으면…
기자가 찾은 이날은 유독 다양한 지역에서 온 보호자와 어린이가 많았다. 광주광역시에서 온 박다혜씨는 딸 조하윤(5)양과 함께 어린이 라운지를 찾았다고 했다. 에르베 튈레 작가가 기획한 돌봄 공간을 꼭 한번 체험해보고 싶어서다.
박씨는 “평소 에르베 튈레의 동화책을 자주 접했다. 책으로만 보던 그림과 조형물을 아이가 직접 만져보며 체험할 수 있어 무척 좋아한다”고 말했다.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아무래도 이런 기회가 잘 없다 보니 아쉽기도 하죠. 부모로서는 돌봄과 예술 교육을 겸한 이런 공간이 앞으로도 많이 생겼으면 합니다.”
이날 충청남도 천안에서 온 안소윤씨도 35개월 된 최이언군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안씨는 “지방에도 문화·예술 공간이 많다. 한데 이렇게 돌봄과 예술 교육·체험이 가능한 곳이 없어 아쉽다”며 “일단 어른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곳 같은 예술의 전당이 노키즈존이 아니라는 게 가장 좋다. 어린 시절부터 문화·예술 공간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부럽다”고 말했다.
3대가 함께 어린이 라운지를 찾기도 했다. 3살 조하율군의 보호자인 이현주씨와 할머니 서영자씨는 공연 관람을 마친 뒤 조군과 함께 어린이 라운지를 차근차근 톺아봤다. 이씨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아이들과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오케이키즈존이 생긴 것”이라며 “보호자로서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다양한 전시도 볼 수 있고 아이 돌봄도 가능하니 참 좋다”고 전했다.
■ 아이들의 일은 ‘노는 것’
“아이들이 하는 일은 노는 것입니다. 제가 오래전 책을 낼 때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작업했어요. 책의 목적은 어른과 아이가 같이 놀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하는 모든 행위는 놀이와 연결된 것인데, 요즘에는 아이들이 놀 공간이 없어요.”
놀이를 통한 영·유아 감성 미술책 시리즈 ‘책놀이’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에르베 튈레의 말이다. 에르베 튈레는 지난달 14일 진행된 어린이 라운지 기자간담회에서 아이들의 놀이와 공간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지난 1월21일 서울 예술의 전당 1101 어린이 라운지에서 예술 놀이를 체험해보고 있는 보호자와 어린이들. 김지윤 기자
에르베 튈레는 “아이들이 마음껏 낙서도 하고 종이 찢기도 해야 하는데 모든 것이 다 어떤 목적이 부여돼 있다. 아이가 무엇을 하든 간에 그 뒤에 어른이 기획한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라며 “이번에 내가 기획·개발에 참여한 어린이 라운지라는 공간은 참여하는 아이들이 자기표현을 하는 것에 주안점을 둔 실험적인 워크숍 전시”라고 전했다. “아직 시작 단계지만 워크숍 형식으로 4~5가지의 예술 놀이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아이들이 체험하고 전시에 참여하는 등 일관성을 갖기 위해 연구 활동과 토론 등 노력을 하고 있지요. 제가 없을 때도 자유로운 놀이 정신이 침해되지 않고 활동이 유지되도록 뉴욕에서 교육전문가, 심리전문가 등과 함께 24개 정도의 놀이안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트센터이다의 홍경기 대표는 “에르베 튈레의 워크숍 자체가 일종의 집단 창작 놀이로, 보호자 중 한분이 들어와 같이 즐길 수 있다. 자리를 옮겨 다니며 놀이 활동을 하는 이유는 아이들의 예술적 감각을 깨우기 위해 일부 의도한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공간에서 무언가 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도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해줬으면 합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 문을 연 ‘라바키즈 아이들세상’. 세종문화회관 제공
■ 공연 보는 동안 자녀 돌봐준다
어린이에게 ‘공간’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넓으면 넓을수록 좋다. 한데 대부분의 사회가 어린이들에게 주는 공간이 너무 작다. 작을 뿐 아니라 노키즈존이라며 ‘출입 금지’를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문화·예술·전시 공간 등이 적극적으로 놀이 공간을 만들어나가고 있어 주목된다.
공연과 전시를 보러 온 부모가 아이를 맡길 수 있고, 아이와 함께 워크숍에 참여하거나 쉴 수 있게 된 것이다. 단순 돌봄 기능도 있지만 예술 놀이를 하면서 부모와 아이가 서로 유대를 강화하는 친밀한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 역시 가족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러 오는 어린이들을 위한 돌봄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6월21일 개관한 ‘라바키즈 아이들세상’(이하 아이들세상)은 세종문화회관 공연 관객을 위한 편의 시설이다.
만 3살에서 7살까지 아이를 동반한 관객이 공연을 보는 동안 전문 보육교사가 아이를 맡아준다. 아이들은 이 공간에서 놀이와 신체활동을 할 수 있다.
아이들세상은 만화영화 전문 제작사인 ‘투바앤’의 기부로 조성됐다. 세종문화회관 서비스플라자 안에 79.1㎡(약 24평) 규모로 만들어졌다. 아이들이 타고 놀 수 있는 2층 미끄럼틀과 볼풀, 보호자를 위한 수유실, 캐릭터가 그려진 어린이 세면실 등이 마련됐다.
세종문화회관 이미지 담당자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공연, 전시와 작품들을 접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보호자와 함께 세종문화회관을 찾은 어린이들은 ‘문화와 예술’에 대해 친숙하게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세상은 자발성, 자유로움, 즐거움을 추구하는 공간 콘셉트입니다. 전문 보육교사의 안전한 돌봄을 통해 세종문화회관을 찾는 부모 관람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지요. 아이들세상을 통해 어린이와 보호자가 모두 즐거운 문화·예술 공간이 된 것입니다.”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