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ㅣ10대를 위한 자기방어수업
“알고 있다, 갖고 있다, 신상정보와 함께 퍼뜨리겠다, 그러니 시키는 대로 해!”
텔레그램 ‘엔(n)번 방’에서 일어난 일의 시작은 이러한 협박이다. 무엇을 알고 있다는 걸까? 세상이 나에게 기대하는 10대다움, 여자다움, 학생다움에 어긋나는 나의 행동을 말한다. 매우 사적인 사진과 동영상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거기에다가 해킹 기술이나 보이스피싱 같은 사기수법으로 개인정보를 덧입힌다. 온라인 공간에 익명으로 올려둔 게시물, 주고받은 메시지, 몰래 다운로드해서 가져간 사진과 멋대로 합성해버린 것들, 거기에 내 개인정보를 붙여서 사실인 양 지어낸 이야기를 덕지덕지 발라가며 나에게 요구하는 행동은, 그다음 협박을 위한 자료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나체 사진을 찍어 보내라, 동영상을 만들어 올려라.” 보안이 강력하다는 텔레그램 메신저에서 번호가 붙은 방을 만들고, 그 방의 운영자와 이용자들은 피해자를 낚아채 이렇게 끝이 없는 협박을 통해 성착취를 이어간다. 대체로 10대 여성인 이들 피해자를 말 그대로 ‘노예’라고 부른다.
10대다움, 여자다움, 학생다움의 규범을 가로질렀다는 것과 타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행여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이런 폭력을 감내해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범죄는 서로 거래되거나 교환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각각의 범죄가 존재할 뿐이다. 마트에서 사과를 훔쳤다고 해서 마트 직원이 그를 성추행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협박을 받고 있다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자기 비난이다. 자기 비난의 함정에 빠지는 것은 협박하는 사람이 가장 바라는 상태다. 내가 절망하기를, 그래서 혼자서만 끙끙 앓고 사람들로부터 섬처럼 고립되기를 그들은 바라고 있다. 그다음 협박이 더 쉬워지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 곧바로 ‘망했다’ 하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을 때조차 그렇다. 가족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도, 친구가 없다고 해도, 사람을 혼자이게 내버려두는 것은 사회가 아니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이제 첫걸음이 시작된다. 천천히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증거 수집을 고려해서 모든 것을 삭제해버리거나 방에서 나가버리지 말고, 어디에 연결되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텔레그램 엔번방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지만 이 극악한 일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온라인상에서 일어나는 성착취를 뿌리 뽑겠다고 뛰어든 기관과 단체를 찾아보는 일은 그 자체로 힘이고, 실제로 도움이 된다.
<표>에 나온 곳뿐 아니라 많은 기관과 단체가 함께 애쓰고 있다. 꼭 누리집을 방문하여 전화상담과 온라인상담 방법을 확인해보기를 바란다. 지역에 상관없이 상담이 가능하고, 모두 비공개상담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상대는 조직적이고 계획적이고 폭력적이고 집단적이다. 협박을 일삼다가 알아서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함께 걸어갈, 연결될 수 있는 곳이 있다. 온라인 협박 끊어내기, 지금이 가장 빠른 때다.
문미정 ㅣ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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