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ㅣ김선호의 우리 아이 마음 키우기
학부모 상담 중 이런 고민을 들었다. “우리 영희, 스스로 하는 게 없어요.” 뭔가 스스로 목표도 갖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얘기였다.
계획적인 삶은 많은 경우 생활습관을 통해 길러진다. 작은 생활습관들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에서도 1년 동안 영희가 스스로 기획하고 몰입할 기회를 주었다.
2년이 지났다. 영희는 고학년이 되었고, 영희를 한번 더 담임 맡게 되었다. 영희의 생활모습은 상당 부분 자기조절감 있는 모습으로 바뀌었고, 상당 부분 자기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
학부모 상담 주간, 영희 어머님은 또 다른 고민을 전했다. “영희가 요즘에 말을 안 들어서 고민이에요.” “어떤~” “뭐라 말하면 맨날 자기가 다 알아서 한대요.”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스스로 하는 게 없어서 고민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자기가 다 알아서 한다는 말에 서운함을 느낀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부모인 나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자녀가 스스로 잘하는 거지요.”
그러나 결론은 ‘내가 다 알아서 한다’는 말에 자존심이 상한다. 부모가 진짜 원하는 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자녀가 (부모가 하라는 대로) 스스로 잘하는 거지요.” 괄호 안의 ‘부모가 하라는 대로’를 감추고 말한다.
자기주도적인 삶은 그 기본 전제가 ‘자신의 욕망’을 찾는 일이다. ‘부모가 하라는 대로’는 부모의 욕망이다. 아이가 그 욕망을 스스로 좇아가길 바라고, 그것을 자기주도적인 삶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일은 일종의 억압이다.
아이가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길 바란다면 먼저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 있다. “나는 우리 아이와 헤어질 마음의 각오가 되어 있는가?”
자기주도적인 삶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심리적 분리를 통해 그 첫발을 내딛는다. 심층심리학자 이수련 교수는 저서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른은 아이가 ‘내 것’을 모두 잃고 빈손으로 사회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을 나는 아이가 자신의 ‘원의’(原意) 없이 타인의 의지만 가득한 채, 그것이 마치 잘 살아가고 있는 어른이 된 모습인 양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을 경계하는 표현이라고 해석한다.
자기주도적이라는 미명 아래 아이가 자신의 주체적 욕망을 잃어버린 채, 부모의 욕망을 스스로 좇아가는 ‘빈털터리’가 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아이가 ‘내 것’을 찾을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지해주자. 그 응원과 지지는 격려가 아니다. ‘분리’다. 아이와 심리적으로 독립을 꿈꾸는 부모의 모습이 자녀에게 ‘내 것’을 선물해줄 수 있다.
김선호 ㅣ 서울 유석초등학교 교사, <초등 자존감의 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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