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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칼럼] 공적인 처벌을 받게 하라

등록 2020-03-30 18:27수정 2020-04-01 15:36

연재ㅣ문미정의 ‘10대를 위한 자기방어수업’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 관계자들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교대역 인근 한 모임 공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텔레그램 성착취 ‘박사방’의 피의자 조주빈씨에 대한 강력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 관계자들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교대역 인근 한 모임 공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텔레그램 성착취 ‘박사방’의 피의자 조주빈씨에 대한 강력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거센 여론에 힘입어 경찰은 단순 이용자도 처벌하는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텔레그램에서 일어난 디지털 성범죄의 잔혹한 현장에서 피해자를 유인하고 협박하여 성착취 동영상을 제작하고 퍼뜨린 운영자와, 이를 찾아다니고, ‘관람’하고, 모욕하고, 환호하고, 부추기고, 의뢰한 ‘이용자’ 중에는 10대도 많다고 한다. 부모라면 교사라면 한번쯤 ‘내 아이, 우리 반 학생이 혹시나 그 끔찍한 범죄를 무감각하게 즐겼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불안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중 누군가는 곧 ‘그렇다’는 고백을 듣게 될 것 같다.

내 아이가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많은 부모들은 공적인 처벌을 막아주기 위해서 그야말로 몸부림을 치게 된다. 집 안에서는 분개하여 폭언을 퍼붓고 주먹을 날리는 사적인 처벌에 몰두할지언정, 집 밖에서는 ‘보호자’의 마음이 되고 만다. 정보기술(IT) 전문가를 찾아 증거를 없애고 가해 사실을 왜곡하는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공적인 처벌만큼은 피하기 위해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린다. 운영자로 검거된 조주빈이 ‘악마’가 아니듯 이 부모들 역시 ‘이기적인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다.

가해자의 부모이고 가해자의 담임교사인 우리는, 가해자의 어린 모습을 기억하는 우리는, 드러난 사실 자체를 믿고 싶지 않다. 그러나 아이는 매번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해왔고, 그것이 차곡차곡 쌓여서 결국은 인격살해라 부를 만한 폭력을 휘둘렀다. 우리가 그의 어린 시절과 선한 모습을 안다고 해서 그의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도대체 ‘왜’ 그런 행동을 했을지에 매달리다 보면 ‘무엇을’ 행했는지를 잊게 된다. ‘왜’ 그랬는지 변명해주려는 마음에, 그가 가진 결핍을 떠올리고 이유로 삼는다. 가해자로서 조사를 받고 처벌의 공포에 떨었을 아이는, 이번에 정말 부모님의 사랑을, 선생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느끼게 되었노라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눈물을 흘리며 고백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과 우리 선생님처럼 나를 감싸주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분노로 마침내 ‘억울함’을 호소하는 날이 올 것이다.

아이는 지금 법적인 위기가 아니라 윤리적 위기에 처해 있다. 부모와 교사 된 마음에서 ‘감싸게’ 되는 우리의 행동은, 그가 기억으로부터 영원한 도망자가 되도록 부추긴다. 가해자가 되기까지 한 방향으로 차곡차곡 쌓아온 선택을 멈추고 자신이 한 일을 똑바로 쳐다볼 기회를 빼앗아버린다. 그렇게 쌓아왔을 자기 세계관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비로소 수치심을 느껴볼 기회를, 자기합리화의 덫에 빠져버리지 않을 기회를, 그래서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이 될 기회를 완전히 빼앗는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반성은 결코 짧은 시간 안에 완성되지 않는다. 눈물만으로, 반성문만으로도 완성되지 않는다. 반성은 길고 긴 시간을, 자신이 ‘쉽게’, ‘별생각 없이’, ‘이렇게 큰 잘못인 줄 모르고’ 한 행동들이 다른 누군가의 인격과 몸과 관계와 세상에 대한 신뢰를 얼마나 깊이 훼손했는지 직면하고 느끼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필요로 한다. 비로소 조성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깜짝 놀라’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사적인 처벌이 아니라 공적인 처벌을 받게 하자. 그제서야 우리는 윤리적 위기에 처한 아이만을 바라보는 부모와 교사가 되는 것이다.

문미정 ㅣ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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