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수시모집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예고 없이 등장한 코로나19는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을 맞게 했다. 전체 입시 일정이 2주 뒤로 밀리면서 고3 학생과 학부모, 교사 모두 심리적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을 목표로 3학년 1학기 학생부 교과와 비교과 영역을 제대로 관리해야 하는 학생들은 사라진 등교로 부담이 더 가중된다. 그러나 모두 똑같은 상황이다. 걱정과 불안보다 기본기에 충실하자는 마음으로 수시와 정시를 준비해야 한다.
2021학년도 4년제 대학 모집 인원 34만7천명 가운데 수시 77%, 정시 23%로 수시 모집 비중이 정시의 3배가 넘는다. 서울 소재 15개 대학으로 압축하면 수시 70%, 정시 30%로 정시가 더 늘지만 여전히 수시가 정시를 2배 이상 앞지르는 강세 구조다. 수시가 유리한 게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모두 수시로 대학에 진학해야 할까?
수시는 정시보다 선발 인원이 많고 원서 접수 시기도 9월23~29일이라 내년 1월7~11일인 정시에 비해 3개월 이상 빠르다. 수시 합격자는 12월28일에 발표될 예정이다. 수시 전형이 끝나고 정시 원서 접수가 이어지므로 수시는 도전 또는 상향 지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정시로 합격 가능한 수준보다 수시에 더 높게 지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능 준비가 미흡하거나 앞으로 수능 학습 계획이 없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무조건 수시에 합격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3 학기 초에는 수시와 정시 중 자신에게 더 유리한 전형을 알아야 한다. 수시와 정시 모두 고려해야 하지만 어느 한쪽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지난 입시에서 만난 학생을 보자. ㄱ 학생은 고1부터 학생부 교과(내신)와 비교과를 잘 관리해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을 준비해왔다. 그런데 3학년은 정시를 위해 수능을 추가로 더 준비해야 한다는 선생님과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설득에 고민이 깊어졌다. 고3이니 수능을 챙겨야 한다는 말에 공감하지만 이제 와서 학습 시간을 쪼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수능 공부에 새로 시간을 할애하면 그동안 준비해온 학생부 중심의 종합전형을 마무리할 시간이 줄고 3학년 1학기 내신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특히 평균 2등급대의 내신이 3등급대로 떨어질 수 있고 내신에서 불리하면 아무리 비교과의 역량과 자기소개서 내용이 좋더라도 목표 대학의 학생부종합전형 합격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컸다. ㄱ 학생의 수능 모의고사 성적은 국어 3등급, 수학 5등급, 영어 2등급, 탐구 4등급 정도였다. 이 학생에게는 한정된 학습 시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학습 효과를 최대화하고 마음의 불안을 누그러뜨리는 게 중요했다. 학생과 합의해 수시에서 논술전형 지원은 배제하되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유리한 대학을 먼저 선택하고 나머지 전형은 수능 최저기준이 있는 학생부교과전형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수시의 수능 최저기준을 고려해 두고 수능은 국어와 영어 위주로 주말에만 공부하고 나머지 시간은 내신에 집중하기로 했다. 수시 합격자 발표 결과 ㄱ 학생은 지원 대학 6곳 중 4곳에 합격했다. 이 가운데 2곳은 수능 최저기준이 있는 전형이었다. 수시에 합격했기 때문에 정시에 지원할 수 없지만 결과에 크게 만족했다. 정시보다 수시를 선택하고 학생부에 집중한 전략은 주효했다. 더구나 수능 최저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수능 준비도 했기 때문에 수시 지원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ㄴ 학생은 중3 때 일반계고에 진학했지만 원하는 고교는 아니었다. 학생부 관리를 위해 내신에 유리하고 학교생활이 다소 여유로운 학교에 입학하고 싶었으나 부모의 반대가 컸다. 1학년 생활의 시작은 녹록지 않았다. 중학교 때보다 1시간 더 빠른 등교에 야간 자율학습까지 하루가 이렇게 긴 줄은 몰랐다. 그뿐 아니라 중간·기말고사와 수행평가 과제는 물론 처음 겪어보는 수능 모의고사 등 적응하기 힘든 1년을 보냈다. 그렇게 받아든 결과는 내신 5~6등급. 2학년이 되어서 학교생활엔 적응했지만 여전히 내신의 벽은 높았고 2학년까지 수상 실적, 동아리 활동, 독서 활동, 자율 활동 등 어느 하나 비교과에서 내세울 만한 강점은 없었다. 내신과 수능은 5~6등급을 벗어나지 못했다. 제한된 시간에 내신과 수능을 모두 준비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수능에 전념하기 위해 내신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만은 없었다. 수시로 진학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ㄴ 학생에게 3학년을 즐기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시를 목표로 수능에 집중하자고 제안했다. ㄴ 학생은 반신반의했지만 둘 중 하나를 고르자면 수시보다 정시가 더 낫다고 최종 결정을 내렸다. 수시를 위해 준비하던 학생부, 논술, 면접 등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수능에만 올인했다. 3학년 때 과감히 정시에 집중한 ㄴ 학생은 9월 모의평가보다 실제 수능에서 성적이 크게 향상됐다. 정시에서 2승1패의 결과를 거두었고 수도권 간호보건계열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1곳은 최초 합격, 다른 1곳은 입학장학금을 받는 기대 이상의 결과였다.
실제로 고3이 되면 ㄱ 학생 같은 사례가 많다. 대부분 수시 진학을 목표로 고1부터 학생부에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고3이라면 자신이 거쳐온 고1, 2학년 과정을 되짚어보고 질문에 답해야 한다. “수시가 최선입니까?” 아니라면 정시도 괜찮다.
이치우 ㅣ 입시평가소장
20여년 동안 입시 현장에서 수많은 수험생을 만났다. 꼴찌에게도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현실은 1등만 주목하는 세상이다. 아이들의 공부 과정을 응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성적표에 나온 숫자만 골라 보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입시 정보에서 소외된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을 찾아가 무료 컨설팅을 해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비상교육 입시평가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