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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인정중독’ 선을 넘지 않으려면

등록 2020-06-08 18:21수정 2020-06-09 09:40

연재ㅣ김선호의 우리 아이 마음 키우기

고맙다고 생각되는 아이들이 있다. 얼마나 내 마음을 잘 헤아리는지 교실 상황을 교사가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수찬이는 늘 내가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해결해주었다.

“배식 당번, 나와서 배식해야지”, “얘들아 빨리 줄 서자. 체육 시간 늦지 않게”, “선생님, 선생님 교무실 가셨을 때 철수랑 영수랑 싸울 뻔했는데, 제가 말렸어요”.

공부, 운동, 악기, 예의 바름, 인성, 리더십, 인기…. 뭐 하나 나무랄 데 없었다. 담임들은 이런 학생이 있으면 참 든든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많은 역할을 준다.

사실 엄밀히 표현하면 이건 아주 큰 유혹이다. 괜찮은 학생이기 때문에 많은 권한을 이양해도 된다는 자기 설득을 하기 쉽다. 아이는 책임이 커지고 무게감을 느낀다. 그 무게만큼 담임은 가벼워진다. 능력이 뛰어나건, 학급회장이건, 열심히 담임교사를 위해 무언가 준비해주건, 학생 이상의 권한을 주는 건 경계선을 허무는 실책이다. 그 아이의 ‘인정중독’을 가속하는 잘못을 할 수 있다.

최근 직장인 심리상담이나 정신분석 관련 책들을 보면 인정중독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들은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해 모든 것에 노심초사하는 자기희생을 기반으로 생활한다. 그 시작은 초등 또는 그 이전에 시작된다. 특히 보호자로서 미숙한 상황에서 자녀를 보호했을 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여기서 미숙하다는 의미는 아이 감정보다 보호자 감정을 먼저 생각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엄마가 자기감정이 좋을 때는 아이를 극진히 공감하고 사랑하다가, 감정이 좋지 않을 때 갑자기 차가운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아이에게는 언제든 보호받을 수 있다는 안정 애착보다 언제든 이유도 모른 채 두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는 불안 애착이 형성된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 인정중독을 선택하게 된다.

인정중독이 고착되면 심한 우울과 함께 자신의 존재감을 없애는 방향으로 나간다. 자기 존재의 이유가 남의 인정에 있으니, 자존감에는 치명적이다.

인정중독으로 흘러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완벽함’으로 자신을 감춰버린다.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그런 상황이 오면, 혹은 올까 봐 힘들어한다. 작은 실수들로 해서 남에게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비합리적 신념과 두려움으로 자학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다. 실수해도, 완벽하지 않아도 그냥 ‘너’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표현이 필요하다. 안타깝지만 대부분 이렇게 말해준다.

“수학 시험 한 문제 틀렸구나. 잘했어. 다음에는 실수를 줄여서 백점 맞아보자.”

하루에 10시간 넘게 운동하는 프로 농구 선수들도 연속으로 25번 자유투에 성공하지 못한다. 한 문제 틀린 아이는 25문제 중 24개 골을 넣은 정말 쉼 없이 노력한 아이다. 그들에게 한 문제 더 맞아 오라는 요구는 인간이기보다 신이 되라 요구하는 것과 같다. 안타깝지만 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존재감이 없다.

김선호 ㅣ 서울 유석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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