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ㅣ김선호의 우리 아이 마음 키우기
요즘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들이다. “떨어져 있으세요.” “서로 터치하면 안 돼요.” “모여 있으면 안 돼요.” “연필, 색연필, 풀 같은 거 친구 빌려주면 안 돼요.” “서로 말하지 마세요.” “밥 먹을 때도 혼자 조용히 먹어야 해요.”
말만 들었을 때는 비교육적인 언어들이다. 이 말들이 요구하는 바는 한 가지다. 학교에 왔지만, 각자 거리를 두고, 관계를 맺지 말고 혼자 있으라는 의미다. 물론 100% 지켜지지는 못한다. 하지만 아이들도 대부분 고분고분 말을 듣는다. 사회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아이들도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간과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자존감의 환경이다. 자존감은 관계 맺기를 통해 발전한다. 어린 시절 충분한 스킨십, 눈맞춤이 자녀의 자아 존재감을 형성한다. 어린이집, 유치원에 등원하면서 규칙을 배우고 엄마·아빠가 아닌 다른 친구들과 관계 맺기 시작한다.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한다. 초등 시기 자기중심성을 점차 벗어나 친구와 절친 단계로 나아간다. 모두 한 단계씩 더 강화되고 촘촘해진 자아 존중감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코로나19가 그 순서를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있다. 1학년 입학한 아이들은 몇 개월 동안 유치원도 학교도 가지 못했다. 이제야 간간이 등교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가거나 격주로 등교한다. 등교해서도 처음 듣는 규칙이 친구와 얘기하지 말라는 환경이다. 관계 맺기를 차단당한다. 관계 맺기를 차단당하는 순간 자존감은 정체된다.
1학년 입학한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 언제부터 운동장에서 놀 수 있나요?” 대답해줄 수 없었다. 이렇게 관계 맺기가 차단되는 코로나 시기, 안전한 거리 두기를 하면서 아이들의 자존감을 지키는 관계 맺기는 없을까? 대부분의 고학년 아이들이 인터넷 게임 창에서 만난다. 그것 말고는 만날 장소가 온라인 공간에 너무 없다. 이런 시기를 준비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아직도 어떻게 온라인 공간에서 만나게 해야 할지 가이드라인이 없다.
아이들이 온-콘택트(On-contact)에서 서로 대화할 장소가 필요하다. 온라인 줌(ZOOM, 실시간 화상 대화 프로그램) 수업이 끝난 뒤 몇몇 학생들이 바로 나가지 않고 남았다. 서로 오랜만에 대화하고 싶다고 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허락해주었고 내가 화면에서 함께 있는 가운데 몇 명의 학생들이 서로 화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어제 무엇을 먹었고, 내일은 무엇을 먹고 싶다는, 요즘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콘서트를 못 하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온라인 화면을 통해 나누는 모습에 생기가 느껴졌다. 그들은 타인과 대화하면서 자기 존재감을 느끼고 있었다.
공부하라는 말 대신, 하루 잠시, 실시간 화상 대화 프로그램을 통해 몇몇 친구들이 함께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하는 시간을 주자. 서로의 시선을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잊지 말자. 자존감은 접촉이 가능한 환경에서 유지된다.
김선호 ㅣ 서울 유석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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