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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초대하지 않은 이유를 물어볼래?”

등록 2020-08-17 17:40수정 2020-08-18 02:37

연재 | 김선호의 우리 아이 마음 키우기

몇 년 전, 방과 후에 민정이가 가방을 멘 채 교실로 들어왔다. “민정아 아직 안 갔어? 뭐 두고 갔니?” “아뇨. 저… 말할 게 있어서….”

다 집에 가고 교실에 아무도 없을 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건 친구들과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의자 하나 내주고 말해보라는 듯 고갯짓을 해주었다.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눈물이 수돗물처럼 주르륵 흘러내렸다.

“학교 오는 게 너무 힘들어요.”

“무슨 일이 있었네. 다른 애들 다 집에 갔으니까 차근히 말해도 된다.”

“일요일에요, 유진이가 생일이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전 금요일날 선물도 준비해서 미리 줬단 말이에요. 근데 어제 학교 와보니까 유진이가 카톡으로 저만 빼고 다른 애들만 불러서 방방(트램펄린 키즈카페)에 갔다 왔나 봐요.”

친구 생일날 자기만 빼고 다른 친구들이랑 놀았다는 사실에 깊은 배신감이 들었다고 했다. 왜 자기는 뺐는지도 궁금했고,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월요일날 평소처럼 같이 놀자고 하는데 뭘 어떡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더 이상 그날 초대받았던 다른 친구들과도 같이 놀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민정이의 고민을 종합해서 한마디로 하자면 ‘그룹으로부터의 배신감, 낙오감’이었다.

생일날 초대받지 못한 아이의 경우 서운함에 머물지 않는다. 그 외에 또 다른 힘겨움이 존재한다. 생일 놀이에 초대받은 아이들로부터 자신은 ‘초대받지 못한 존재’로 낙인찍혔다는 수치감이 올라온다. 초대받은 모든 아이들한테 자신이 거부당했다는 ‘비합리적 신념’이 자리하게 된다. 이는 집단에 의한 낙오감으로 느껴진다.

“민정아~ 생일 선물까지 준비해서 줬는데… 생일날 초대받지 못하고, 평소에 친하게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배신감이 크겠구나. 화도 날 거고. 너무 오래 시간 끌면 민정이 네가 힘들어져. 생일날 누구를 초대할지 초대하지 않을지는 본인의 선택이거든. 그래서 그걸 선생님이 뭐라 할 순 없어. 하지만 초대받지 못한 네 입장에서 화가 날 만해. 이런 건 용기 내서 말할 필요가 있어. 그럼 고민이 빨리 끝나. 내일 점심시간에 유진이한테 물어봐. 왜 생일날 초대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중요한 게 있어. 거기에 초대받은 다른 친구들이랑 같이 놀아도 돼. 그 친구들은 그냥 초대받아서 간 것일 뿐이야. 그 친구들도 민정이를 초대하지 않은 건 아니거든. 그건 구별해야 해.”

그렇게 말을 듣고 집에 갔지만, 다음날도 민정이는 유진이에게 초대하지 않은 이유를 물어보진 못했다. 직접 말하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한달쯤 지나서야 물어보았고, 둘은 다시 놀기로 했다. 직접 물어보는 용기, 쉽지 않다는 걸 안다. 특히 내향적인 아이일수록 더 어려워한다. 그 어려운 한 걸음을 내디딜 때까지 기다리고 지지해주어야 한다. 그 한 걸음은 아이들의 자존감에 중요한 발자국이 된다. 그 누구도 그 발자국을 대신 찍어줄 순 없다.

김선호 ㅣ 서울 유석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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