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최수일의 ‘웃어라 수포자’
수능은 상대평가다. 고등학교 내신제도도 9등급 상대평가다. 중학교까지는 절대평가라고 할 수 있는 성취평가제가 10년 전부터 운영되고 있는데, 아직 정착하지 못했다. 고등학교에서 성취평가제와 더불어 여전히 상대평가를 병행하고 있으며, 대학 입시에서 이 상대평가 점수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교육정책에 일관성이 없다. 한 나라에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두 제도가 공존하지만 절대평가는 무용지물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이 작동하는 것이다. 줄 세우기 편한 상대평가가 절대평가보다 우위에 있다.
교육정책에 일관성이 없는 부분은 이뿐만이 아니다. 수업에서 강조하는 학생 참여 중심의 수업과 과정 중심 평가를 확대하는 정책도 마찬가지다. 각 시·도 교육청은 10여년 이상 학습자 중심 수업의 혁신에 힘써왔으며, 이런 노력이 교육과정에 반영된 것이 학생 참여 중심의 수업과 과정 중심 평가를 확대하는 정책이다. 이는 협력적 문제해결능력을 중시하는 미래 교육의 방향에도 부합한다. 그렇다면 평가도 미래 지향적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오지선다형 찍기 시험인 수능은 과거에 머물고 있다. 이에 오히려 학교 내신시험이 수능과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과거로 회귀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대학 문이 좁아서 과열 경쟁을 해야 하고, 내신에서 1등급 4%를 만들어야 하므로 불가피하게 시험으로 선발한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오지선다형 찍기 시험은 아니다. 일부 시·도 교육청에서는 내신시험의 서술형 출제 비율을 30% 내외로 권고함으로써 수학 시험에 서술형이 출제되게 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은 수능이 오지선다형인데 학교 시험에 웬 서술형이냐며 불만을 제기하고, 교사들은 서술형 문항의 채점 민원 등으로 불편을 겪으니 어떻게든 서술형 출제를 최소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서술형 채점 민원은 충분히 예견된 사항인데도 교육부나 교육청은 이런 민원을 막아줄 아무런 장치도 마련하지 않고, 현장 교사들에게 책임을 지우며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선다형은 마킹한 카드를 판독하는 것으로 채점이 끝나지만, 서술형은 일일이 채점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서술형 채점을 담당한다고 해도 교사가 보완해야 할 일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지구상에서 선다형이 남아 있는 곳은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선다형은 이제 교육에서 사라지고 있다. 힘들고 어렵지만 서술형이나 논술형으로 시험을 치르는 나라는 선다형의 편리함을 몰라서가 아니라 찍기가 유발하는 교육적 폐해가 치명적임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레셤의 법칙은 선다형과 서술형 사이에서도 작동한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선다형 문제는 환경문제로 보면 온실가스를 무분별하게 배출하고 막개발을 일삼는 것과 같다. 이는 결국 지구 대기를 오염시키고 도시문제를 유발한다. 당장 편리하게 줄 세우고 손쉽게 선발하는 방법으로 컴퓨터를 이용한 채점이 한때 각광받은 것이 사실이나 카드에 점을 찍는 것으로 교육이 망가지는 현실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
최수일 ㅣ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교육혁신센터 센터장

문제해결능력을 키우려면 선다형 문제를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울의 한 학원에서 학생들이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모습.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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