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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아이들의 수치심을 보호해주세요

등록 2020-11-02 17:27수정 2020-11-03 09:17

연재ㅣ김선호의 우리 아이 마음 키우기

몇년 전 체육 시간이었다. 50m 달리기 측정을 마친 민철이(가명)가 갑자기 영수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자신을 비웃었다는 게 이유였다. 영수는 비웃거나 놀리지 않았다. 친구들이 측정받는 동안 그냥 옆 친구와 수다를 떨며 웃었을 뿐이었다.

주먹질한 민철이는 평소 폭력적이거나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는 아이가 아니었다. 단지 달리기를 못한다는 것에 높은 수치감을 갖고 있었다. 수치감이 높은 아이들은 자신의 수치심을 건드리는 무언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민철이처럼 자신의 부끄러운 달리기 실력이 누군가에 의해 노출되는 것에 대한 강한 통제가 결국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평소 잘 지내지만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흥분하거나 화를 내는 경우, 그 부분에 대한 높은 수치심이 감춰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때는 찬찬히 물어가며 개인적으로 수치감이 느껴지는 부분에 대해 보호를 받는다는 느낌이 들도록 해주어야 한다.

수치심이 높은 아이들의 특징 중 하나로 ‘근면성 부재’가 있다. 근면한 아이들의 경우 꾸준히 행하기 위해 자기 조절력을 사용한다. 하지만 수치감이 높은 아이들은 조절력보다 강한 통제나 억압을 선택한다. 자신이 부끄러운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신 또는 타인을 통제·억압하는 데 에너지를 사용한다. 결국 집에서는 에너지 고갈 상태가 되고 무언가 꾸준히 행하는 데 힘겨움을 느낀다.

수치심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보호의 대상이다. 이 말은 아이에게 의지를 갖고 너의 수치심을 극복하라는 말이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의미다. 우리 아이가 어떤 특정한 상황에 대해 수치심이 높다면 일단 그 부분에 대한 보호가 먼저 요구된다. 아이들은 그 보호된 상황에서 안전감을 느끼고 자신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긴다.

수치심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 중 하나는 아이가 흥미를 느끼는 것에 대해 꾸준히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 작더라도 꾸준하게 성취감을 맛보고, 그 성취감은 자신의 존재를 좀 더 당당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또한 꾸준함을 통해 자기 조절력을 높일 수 있는데, 이는 수치심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안타깝지만 많은 경우 문제집을 꾸준히 푸는 것 이외의 상황들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하는 일이 많다. 공부가 아니더라도 아이가 재미있어하는 것을(스마트폰 게임은 제외) 꾸준히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 그 꾸준함을 통해 형성된 자기 조절력이 자녀의 수치감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심리 전문가 브레네 브라운 교수는 저서 <수치심 권하는 사회>에서 단호하게 말한다. “수치심은 폭력만큼 위험하다.”

나는 더 강하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수치심은 폭력보다 위험하다.”

적어도 폭력은 눈에 보이는데 수치심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투명인간과 싸우는 것만큼 불리한 게임은 없다. 우리 아이들이 그런 불리한 게임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선호 ㅣ  서울 유석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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