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흥!’ 호랑이 두 마리가 맹렬한 기세로 설원을 질주한다. 얼핏 살아 있는 동물처럼 보이는 이들은 서울대공원에서 자연사한 시베리아호랑이 ‘한울이’와 ‘코아’다. 서울대공원 윤지나, 임동섭 박제사는 호랑이 가죽을 마네킹에 씌우고, 앞발에 쭈뼛 곤두선 털 한 올 한 올을 세밀하게 재현하여 1년간의 작업 끝에 원형을 되살려냈다. 멸종위기 동물의 종 보전과 그들이 살아온 흔적을 후세에 기록하는 서울대공원 박제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서울대공원 윤지나(오른쪽), 임동섭(왼쪽) 박제사. 사진 손홍주
Q. 와, 동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것 같아요. 여기 있는 이 친구들이 전부 다 박제 동물인 건가요?
A. 윤지나 박제사(이하 윤)_ 맞습니다. 이곳 서울대공원 수장고에는 370여 점의 표본이 모여 있답니다. 사실 박제는 표본에 포함되는 개념이에요. 표본은 동물의 몸 전체나 일부를 영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게 처리한 것인데요. 그중 가죽을 활용하면 박제, 뼈를 이용한 것을 골격이라 불러요. 수장고를 둘러보면 아시겠지만 박제표본과 골격표본을 주로 만들고 있어요.
임동섭 박제사(이하 임)_ 서울대공원에서는 모든 동물을 표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자연사한 멸종위기종이나 희귀종을 우선적으로 제작하고 있어요. 여기에 있는 희귀종 거북인 갈라파고스코끼리거북, 말승냥이(회색 늑대) 등이 그 예입니다.
Q. 서울대공원 박제사는 어떤 일을 하나요?
A. 윤_ 먼저, 동물원에서 동물이 자연사하면 부검 현장에 가서 동물을 표본으로 제작할지에 대한 여부를 판단해요. 그리고 표본제작실에 가지고 와서 작업에 들어갑니다. 또, 수장고의 적절한 온습도 환경을 유지하고, 내부에 해충이 들어오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습니다. 동물원 곳곳에 저희가 만든 표본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오래된 표본을 보수하거나 교체하기도 하죠. 우리 동물원의 ‘동물교실’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동물 표본을 활용한 수업도 종종 하고 있어요.
서울대공원은 말승냥이(회색 늑대)처럼 자연사한 멸종위기종이나 희귀종을 우선적으로 표본을 제작하고 있다. 사진 손홍주
Q. 두 분은 어떻게 박제사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요.
A. 윤_ 저는 미대에서 조소를 전공했는데요. 한편으로 동물을 연구하고 싶은 마음은 늘 지니고 있었어요. 그러다 수의대 동물해부학 연구실에서 골격표본을 만드는 과정을 배우면서 자연사박물관의 매력에 빠졌죠. 박제를 통해 미술 전공을 살리면서도 동물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인천 국립생물자원관에 계시는 유영남 선생님을 찾아가서 박제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했죠. 박제를 시작한 건 10년, 서울대공원에 온 지는 햇수로 6년이 되었네요.
임_ 사실 윤지나 박제사님과 제 스승님이 같아요.(웃음) 박제를 전문으로 배우는 전공이나 학교가 따로 없다보니 보통은 다른 일과 병행하며 익혀요. 저는 생물학을 전공했어요. 어릴 때부터 과학을 좋아했고, 특히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만들기를 좋아했거든요. 실제로 2013년부터 박제를 시작하고 재미를 느껴서 이 일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 중이랍니다.
Q. 지금까지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박제 표본이 있다면요?
A. 임_ 아무래도 올해 초 완성한 ‘한울이’와 ‘코아’ 아닐까요? 복원 작업이 오래 걸리기도 했고, 평소에 쉽게 만날 수 없는 거대한 호랑이를 다루다보니 기억에 남아요.
윤_ 두 발이나 한 발로 땅을 딛고 서 있는 역동적인 호랑이의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무게중심을 밑으로 잘 맞춰야 했는데요. 한번은 360° 회전하면서 한울이를 촬영하다가 한울이가 중심을 잃고 쓰러진 적이 있어요. 결국 귀가 부러지는 바람에 나중에 작업을 다시 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죠. 저희 둘 다 정말 놀랐어요.(웃음)
임_ 아무래도 몸 끝에 있는 얇은 부위는 살짝만 부딪혀도 부러지기 쉽거든요. ‘한울이’와 ‘코아’가 크다보니 최대한 단단하게 만들고자 했는데, 혹시나 모를 파손을 방지하기 위해 적정선을 맞추는 것이 중요해요.
Q. 시베리아호랑이종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하얀 눈밭에서 역동적으로 달리는 모습을 재현했기 때문인지 특히 생동감이 넘치는 것 같아요. 올해 4월 ‘한울이’와 ‘코아’의 박제를 완성하고 나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요.
A. 윤_ 저희의 이야기가 많은 매체를 통해 기사로 나갔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악플이 대부분이었어요. ‘잔인하다’, ‘죽어서도 동물에게 못할 짓이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저도 누구보다 동물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속상하더라고요.
임_ 그래서 박제를 해야 하는 이유와 박제가 가지는 역사적인 의의에 대해 최대한 많이 설명하려고 해요.
Q. ‘동물을 박제한다’라는 사실 자체에 대해 불편한 시선이 아직 존재하는군요. 박제사가 말하는 박제의 진정한 가치란 뭘까요?
A. 임_ 전시나 교육 자료를 남기기 위해 실제 모습을 재현한 박제표본을 만드는데요, 원래 표본은 연구 목적으로 많이 활용합니다. 표본으로 박제된 동물의 모습을 통해 생물학적인 자료로 역사를 기록한다는 의미가 있어요.
윤_ 또, 살아 있는 야생 동물은 멀리서만 보지만 박제된 동물은 가까이서도 관찰할 수 있잖아요. 관람객들이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 표본을 보면서 그 동물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죠. 궁극적으로 생물다양성 유지와 동물보호의 의미를 되새기며 박제를 만들고 있어요. 가끔 ‘박제 작업을 하는 게 징그럽지 않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많은데요, 저는 동물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아, 이 동물의 구조가 이렇게 생겼구나’라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답니다.
서울대공원 수장고에는 370여 점의 표본이 보관되어 있다. 사진 손홍주
Q. 박제사가 되려면 어떤 준비를 하면 좋을까요?
A. 윤_ 동물행동학이나 동물생태학, 동물해부학(근골격계해부학)에 대해 공부하면 좋아요. 보통 박제하는 사람들이 뭔가를 만지작거리며 만드는 걸 좋아해요. 심심할 때 동물을 관찰하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동물 모형을 만들어보면서 생김새를 손으로 익히는 것을 추천해요.
임_ 문화재청에서 주관하는 국가자격인 문화재수리기능자(박제 및 표본제작공) 자격증을 취득해야 합니다. 천연기념물을 박제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자격증이에요. 잉꼬나 꿩처럼 작은 조류 표본을 시간 내에 박제하는 실기시험과 면접 과정을 거쳐야 해요.
Q. 두 분이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나 다음 계획이 있다면요?
A. 윤_ 산양, 고라니, 멧돼지, 호랑이와 같은 우리나라 토종동물의 마네킹을 시리즈로 만들어서 후배 박제사들이 더 수월하게 표본을 만들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어요. 외국에서 열리는 국제적인 박제 대회에 참가하면서 후배들에게 물길을 터주기도 하고요. 앞으로는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렛서판다나, 이미 멸종한 검치호랑이를 박제기술을 사용해 복원할 계획이 있어요. 참고로 설표는 지금 작업에 들어갔는데 내년쯤 만나볼 수 있을 거예요.
임_ 얼마 전에 두루미 박제를 완성했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았어요. 다리가 가늘고 긴데 몸통은 커서 무게중심을 잡고 서 있기가 힘들더라고요. 기회가 된다면 다시 도전해보고 싶어요. 제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박제표본을 후대 사람들이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정말 잘 만들었다”라고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Q. 박제사라는 직업에 막 관심이 생겼을 청소년 친구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A. 윤_ 동물 사체를 직접 관찰하고 마음껏 만져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박제사는 매력적인 직업이에요. 박제는 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자기만의 노하우을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죠. 참, 서울대공원 내 돌고래이야기관 2층에 박제 전시 코너를 새로 만들 계획이에요. 곧 여러분을 찾아갈 예정이니 많이 기대해주세요.
임_ 무엇보다 동물을 좋아해야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좋아하면 더 자세히 보는 것처럼, 동물에 대한 관심이 넘쳐야 할 것 같아요. 서울대공원 유튜브에서 다양한 동물의 소식을 전하고 있으니 동물 좋아하는 친구들은 많은 관심과 ‘좋아요’ 부탁해요!
■ 윤지나, 임동섭 박제사가 알려주는 박제 표본 제작 과정
이은주 MODU매거진 기자 silver@modu1318.com
글 이은주 ‧ 사진 손홍주, 윤지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