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는 개나 고양이 같은 소동물부터 소, 돼지 등 산업동물인 대동물 등 모든 동물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직업이다. 오늘은 한국마사회 말 전문 동물병원에서 말을 위한 의술을 펼치는 말 수의사를 만났다.
한국마사회 렛츠런파크 서울 진료 담당 김영종 수의사. 사진 최성열
“말 못하는 말의 고통을 줄여주는 명의가 되고파”
렛츠런파크 서울 진료 담당 김영종 수의사
Q. 말을 전문적으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말 수의사는 어떤 일을 하나요?
사람이 아프면 의사를 찾듯, 말도 아프면 말 수의사를 찾습니다. 가벼운 감기부터 심한 부상까지 모두 말 전문 수의사가 진료와 치료를 하죠. 일반적으로 수의사의 일은 임상 분야와 비임상 분야로 나뉩니다.
임상 분야란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일이라면 비임상 분야는 검역과 예방, 연구와 행정, 교육 등을 담당합니다. 한국마사회 말보건원 소속 말 수의사가 되면 임상과 비임상 분야를 모두 맡게 됩니다.
Q. 말은 보통 어떤 질병 때문에 선생님을 찾아오나요?
경주마는 운동선수라고 생각하면 쉬워요. 빠르게 달리는 훈련을 하다보니 근육과 뼈를 다치는 근골격계 질환과 호흡기 질환을 많이 겪어요. 또 장이 뒤틀리고 가스가 차는 ‘산통’이라는 질병도 흔합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원하는 만큼만 먹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만, 훈련을 받다보면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좁은 구획에서 운동을 하기 때문에 대장 등 소화기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일이 있거든요.
Q. 코로나19처럼 말에게도 치명적인 전염병이 있나요?
‘아프리카마역’이라는 전염병이 있어요. 최근 태국에서 발생한 말 전염병인데, 감염성이 높고 치명적이죠. 확진되면 거의 전부 폐사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질병이에요. 우리나라는 아프리카마역을 관리 대상 질병으로 지정해서 질병 유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고요. 반면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경주나 대회를 많이 쉰 덕에 오히려 아픈 말은 적어졌답니다. 말과 말 사이의 접촉도 적어지고, 자주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죠.
Q. 4년째 한국마사회에서 진료 담당 업무를 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진료 에피소드가 있으실 텐데요.
수술이 필요한 말은 마취부터 시작합니다. 말은 사람처럼 배를 위로 하고 누워서 마취를 하고 개복수술을 하는데요,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에 들어간 뒤 네 다리로 바르게 일어나야 잘 끝난 수술이라고 봅니다. 예민한 환마의 경우 수술 후 일어나지 못하고 꼬꾸라져 기능을 잃는 경우도 있거든요. 회복 시간은 2시간 정도를 평균적으로 보고요.
한 번은 관절 수술을 마친 환마가 회복실에서 일어나질 않더군요. 그래서 해외 연수에서 배워온 회복 방법을 써봤죠.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는 환마를 사람이 도와서 꼬리와 머리를 잡아 밀어 올리는 방법인데, 다행히 효과를 봤어요. 수술부터 회복까지 장장 8시간이 걸렸더라고요. 이렇게 직접 배워온 새로운 의료 기술을 현장에서 접목하고, 말이 건강하게 병원을 나설 때 가장 보람을 느끼죠.
Q. 말 수의사가 되려면 역시 수의사 자격증이 꼭 필요하겠죠?
수의사 국가시험을 보고 자격증 취득은 필수입니다. 전국에 6년 교육과정 수의과 대학은 강원대, 건국대, 경북대, 경상대, 서울대, 전남대, 전북대, 제주대, 충남대, 충북대 총 10개가 있어요. 동물의 생명과 직결된 일이다보니 동물에 대한 애정과 관심도 꼭 필요해요. ‘어디가 아프다’라고 직접 말하지 못하는 동물의 아픈 곳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관찰력과 눈썰미도 있어야 하죠. 또 미국, 호주 등 경마 산업과 수의학이 훨씬 발달한 해외 기술을 계속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영어 실력을 키워두는 게 좋습니다.
Q. 말 수의사의 전망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요.
현실적으로 보자면 한국마사회 소속 말 수의사는 수입과 안정성 면에서 큰 장점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말을 치료하고 진단하는 말 전문 병원과 개업 수의사들의 경우 수가 적은 편이죠.
사실 말산업이 발전하려면 정부의 도움이 필요해요. 말산업 중 경마가 90%를 차지하고 있지만 사행 산업(카지노업, 경마, 경륜, 경정, 복권 등의 산업)이다보니 매출과 성장에 총량을 두는 등 법적인 제한이 크거든요. 말산업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바뀌는 게 가장 좋겠죠. 사행 산업을 넘어 레저스포츠로 인식해주었으면 해요.
Q. 마지막으로 말 수의사를 꿈꾸는 청소년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라는 책을 읽어보세요. 개와 고양이처럼 반려동물 수의사 외에도 양돈, 양계, 양봉 등 산업동물 수의사와 수의직 공무원 등 다양한 분야의 수의 업무를 현직 수의사 23명이 소개하는 내용이에요. 산업동물 수의사의 업무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답니다.
말 수의사라는 직업은 대중적이지 않죠. 실제로 말을 보기도 쉽지 않고요. 일단 수의학과를 목표로 공부한 뒤 특정 동물에 관심이 생겼다면 여러 정보를 찾아보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지금 읽고 있는 인터뷰도 도움이 될 거예요.(웃음)
■ 말 수의사의 진료 차트
진료 예약과 1차 진단
한국마사회 말 동물병원의 진료와 치료는 모두 예약제. 말을 관리하는 마필관리사 또는 기수가 말의 상태를 보고 진료를 예약한다. 경주마 1500마리를 전부 말 동물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어, 개업 수의사가 각 마방(말을 키우는 공간, 일중의 마구간)에 들러 방문 진료를 하기도 한다.
마필관리사에게 증상을 들은 뒤 말 수의사는 말의 걷는 모습을 확인한다. 먼저 시멘트 바닥에서 평범한 속도로 걷는 모습(평보)과 빠르게 걷는 모습(속보)을 관찰한 뒤 어디가 불편한지 눈으로 확인한다. 그 후 증상이 있는 곳을 눌러보고, 구부리거나 펴보면서 촉진(환자의 몸을 손으로 만져서 진단하는 일)한다.
정밀 검사
1차적으로 진단이 끝나면 엑스레이와 초음파를 찍어보며 질환을 정밀 검사한다. 말은 아주 예민한 동물이기에 검사 전에 진정제를 투여해야 한다. 개와 고양이도 네 다리를 잘 잡아줘야 검사와 진료를 수월하게 할 수 있듯 말도 마찬가지다. 밀폐된 상태에서는 작은 자극에도 크게 난동을 부릴 수 있어 마필관리사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말이 놀라지 않도록 토닥여주며 안정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말 수의사는 말을 진료할 때 공사장에서 쓰는 안전모, 육중한 무게의 말에 밟혀도 부상을 입지 않도록 발등에 철판을 깔아 만든 안전화 등으로 몸을 보호한다.
치료 및 재활
정확한 진단을 내린 뒤에는 그에 맞는 치료를 진행하고, 향후 계획까지 세워준다. 예를 들어 근육이 손상됐다면 항생제와 소염제를 처방하고, 냉찜질을 하는 등이다. 또한 얼마간 마방에서 쉬게 하거나 재활을 위한 운동 방법을 알려준다.
경주마의 체중은 기본 400~500kg에 육박하며, 무거운 말을 눕혀 수술할 때는 네 다리를 묶어 들어 올린 뒤 중장비에 고정한다. 수술 베드에 눕혀 수술실에서 회복실까지 라인을 타고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전정아MODU매거진 기자 jeonga718@modu1318.com
글 전정아 · 사진 최성열,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