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정답 없는 대입 준비 과정…학부모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등록 2020-11-09 17:09수정 2020-11-10 02:34

연재 | 이치우의 차이 나는 입시클라스

ㄱ학생은 중3 겨울방학 때부터 대입 진학 상담을 시작했다. 고교 1학년 중간고사가 3학년까지의 성적을 결정하는 지표라 중3 겨울부터 고교 과정을 잘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학생은 중학교 과정까지 공부를 잘해왔기에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서울 강남의 자율형사립고에 진학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내신을 염려한 어머니의 설득으로 일반계 고교를 택했다.

중3 겨울방학 동안 고등학교 과정을 선행학습하고 수능 대비 수학 과정도 마쳤다. 그런데 막상 고등학교에 입학하니 수업 적응이 쉽지 않았다. 과외와 학원에 의존해 성적을 유지했던 공부 방식이 고등학교 과정에는 잘 맞지 않았다. 집중력은 오히려 떨어지고 성적에 대한 긴장감은 더 커졌다. 입학 전 선행학습을 했으니 고교 첫 과정은 알고 있어야 하고 상위권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중압감이 생겼다.

ㄱ학생은 상위권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부모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미움으로 갈등의 시간이 많았다고 했다. 또한 어머니와의 불통도 학업 열정을 떨어뜨리고 자기주도학습을 방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생각은 달랐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안에서 학생이 원하는 모든 것을 수용하고 오롯이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게 물심양면 지원하는데도 목표의식이 흔들리며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입을 준비하면서 겪는 과정과 그에 따른 결과에서 옳고 그름에 대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소신이냐 대세냐, 지금의 행복이냐 미래의 안정이냐. 어쩌면 정답이 없는 게 맞을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대입을 준비하면서 겪는 과정과 그에 따른 결과에서 옳고 그름에 대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소신이냐 대세냐, 지금의 행복이냐 미래의 안정이냐. 어쩌면 정답이 없는 게 맞을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갈등의 골이 깊어지며 ㄱ학생과 어머니는 언쟁하는 날이 잦았고, 집안 분위기도 냉담하게 얼어붙었다. 그렇게 학생과 몇차례 상담이 오가면서 우연히 학생 어머니가 전직 중학교 국어교사였음을 알게 됐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대입을 바라보다가도 ‘내 아이의 미래가 걸린 입시’라는 생각의 틀에 갇히게 되면 시야가 흐려지고 냉철한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아이에 대한 무한 기대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당분간 학생을 지켜만 보고 의견 충돌이 있을 경우 훈계는 자제하되 학생의 말을 경청하고 철저히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고 권했다. 어머니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관계는 눈에 띄게 나아졌고, 1학년 2학기부터 서서히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학업의 빈틈을 채우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학생은 스스로 단기 목표를 정하고 달성하며 예전의 자신감을 회복해갔다.

ㄱ학생은 수시모집에서 목표했던 서울의 상위권 대학이 아닌 수도권 대학 캠퍼스 불문과로 진학했다. 비록 어머니의 기대에는 못 미쳤으나 학생이 원하던 전공이었다. 앞서 ㄱ학생의 오빠도 부모의 바람대로 의대에 입학하진 못했으나 본인은 인서울 중위권 대학 화학공학과에 입학해 만족스러운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해 수능시험 결과가 발표되고 만난 ㄴ학생의 사례를 보자. 이 학생은 정시모집 생명과학과를 둔 인서울 대학 가운데 지원 가능한 대학이 어디인지 알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동안 의대 진학을 목표로 대입을 준비해왔다고 한다.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을 목표로 1학년부터 꾸준히 준비했으나 2학년 1학기까지 내신 평균 석차등급이 3등급이 나오자 수시모집을 포기했다. 정시모집으로 전략을 바꾸고 과외와 학원 수업을 병행하며 정시 수능 준비에 매진했다.

6월 모의평가 결과, 국어와 영어 1등급, 수학 가형과 생명과학1, 지구과학1에서 각각 2등급, 2등급, 4등급을 받았다. 수학과 과학탐구에서는 생각만큼 빠르게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ㄴ학생 어머니 얘기로는 학생은 문과 성향이 강한데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이과를 선택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부모 모두 직업이 의사였고, 집안 대대로 의사를 많이 배출했다고 한다.

이러한 성장 배경 때문에 학생도 의대 진학 목표에 크게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의대 진학을 위한 학생부 교과와 비교과, 수능 공부는 만만찮았다. 가나다 군별 지원 가능 대학을 추천받고 상담을 마칠 즈음에 학생이 부모의 눈치를 보며 질문했다. “재수를 한다면 수능 성적이 얼마나 오를까요?” 의대 진학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 표정이 어두웠던 어머니의 얼굴에 순간 화색이 돌았다. ㄴ학생은 그해 정시모집에서 인서울 대학 2곳의 생명과학과에 복수 합격했으나 결국 등록하지 않았다. 약학전문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처음 목표했던 의대 진학을 위해 수능 재도전을 결심했다. 그리고 3수를 거쳐 정시 수능으로 지방 거점 국립대 의대에 진학했다. ㄴ학생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으나 의외로 담담했다.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여전히 이게 뭔가라는 의구심과 허탈함이 엿보였다.

대입을 준비하면서 겪는 과정과 그에 따른 결과에서 옳고 그름에 대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어쩌면 정답이 없는 게 맞을 것이다. 소신이냐 대세냐, 지금의 행복이냐 미래의 안정이냐. 무엇이든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한 선택만이 후회를 최소화하는 길이 될 것이다.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는 되돌아볼 수는 있어도 다시 시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녀가 초중고를 거쳐 성인으로 성장하는 동안 부모도 같이 성장해야 한다. 부모의 목표나 기대치가 그대로 자녀에게 투영되고 자녀는 명령대로 따르기만 한다면 행복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학부모는 학생의 보호자이지만 선은 넘지 말아야 한다.

이치우 ㅣ 비상교육 입시평가소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