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이치우의 차이 나는 입시클라스
고2 남학생의 어머니는 다소 화가 난 모습으로 학생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면서 상담실로 들어왔다. 아들이 지금까지 집에서 진득하게 앉아 공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어머니는 그냥 알아서 하게 놔둬야 할지, 엄하게 잔소리를 해야 할지 고민이 깊다고 했다.
학생의 생각은 달랐다. 학교 수업 시간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하기 때문에 집에서 더 많은 공부를 하는 것은 힘들다고 했다. 두 사람이 같은 상황을 서로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아들에게 내년이면 고3이 되고 지금은 기말고사 기간이니 이제부터 제대로 공부해보라고 다독였다. 아들은 이내 수긍하며 자신도 오늘부터 공부하기로 다짐했다며 방으로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 잠시 뒤 문을 열고 나온 아들은 목이 마르다며 물을 마시고 다시 들어갔다가 5분 뒤에 또 나와서 화장실에 다녀갔다.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해서 1시간 뒤쯤 간식을 챙겨 노크를 했는데 답이 없었다.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아들은 책상에 엎드려 곤히 자고 있었다. 긴 한숨을 쉬며 방문을 닫았다.
어머니는 상담실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학생에게 요사이 가장 하고 싶은 게 뭔지 물었다. 학생은 망설임 없이 ‘공부’라고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지금보다 성적을 올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려면 최소 내신 3등급 이상은 받아야 한다는 걸 학생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의 다짐 외에 구체적인 학습 계획을 세우거나 오랜 시간 제대로 공부한 경험은 없었다. 자신에게 적합한 공부 방법과 부족한 과목이 뭔지, 어디서 공부해야 능률이 오르는지 등 자신의 학습 상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집에서는 도저히 집중을 못 하는 학생에게 가까운 독서실에서 공부해볼 것을 권했다. 얼마 전 상담한 다른 학생도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자기 방보다 독서실이 집중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 학생은 대학생 언니와 중학생 동생이 종일 집에 있어서 방해를 받는데다 저녁에 티브이 보는 걸 좋아해서 학습 방해 요인을 차단하기 위해 독서실을 선택했다고 했다. 방과후 자율학습, 독서실, 스터디카페, 학원, 개인 공부방 등 다양한 학습 공간 중에 자신에게 적합한 장소를 선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다시 처음 학생의 사례로 돌아가자. 상담하면서 학생의 과목별 성적을 물었더니 내신 기준으로 국어, 영어, 사회 과목은 3등급 내외, 수학은 4등급, 과학은 5등급이라고 말했다. 가장 좋아하는 과목인 영어는 2등급을 받은 적이 두 학기라고 했다. 다행히 학생이 인문계열이기 때문에 영어 > 국어 > 사회 > 수학 > 과학 순으로 성적은 괜찮아 보였다. 수학은 주말에 학원에서 수업을 받고 영어는 인터넷 강의, 국어는 혼자서 공부한다고 했다. 자기 나름의 공부를 해오고 있는데, 단지 의자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한다고 해서 불안해하는 어머니를 보면 답답하다고 했다.
학생과 비슷한 사례가 적지 않다. 특히 고3을 목전에 둔 경우, 부모와 학생 모두 시간에 대한 압박감과 성적 향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조급해한다. 그런데 지난 고1~2학년 과정을 보면 나름대로 성실하게 자기만의 공부를 이어온 학생들이 꽤 많다. 그럼에도 부모는 부족한 절대 학습량과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에 실망하며 자녀의 공부에 깊이 관여하려 하고, 이는 공부에 대한 압박으로 나타나게 된다. 자녀를 위한다는 생각이 되레 갈등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자칫 이러한 방법은 악순환으로 이어져 자녀의 고3 수험생활 기간 동안 주기적으로 반복되기 십상이다.
고교 2학년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대입의 중요한 전형 요소인 학생부와 수능이 어느 수준인지 정확하게 짚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성적으로 목표 대학 진학이 가능하다면 성적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목표를 더 높게 잡을 수도 있다. 반대로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친다면 학생부와 수능에서 얼마나 더 성적을 올려야 하는지, 성적 향상을 위해 어떤 방법으로 남은 시간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장기적인 학습 계획을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단기 계획을 수립해 3개월가량 실행해보고 학습 효과가 나타나야 동기부여가 된다. 앞서 소개한 고2 학생은 우수한 영어 교과 성적을 최대한 활용해 서울 소재 대학 영어영문학과에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입학했다.
대학 진학 이후 다시 만난 학생의 어머니는 그때 일을 떠올리면서 엄하게 채근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는 다른 학생들과 비교하면 아들이 뒤처지는 것만 같아 감정이 앞섰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말에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강압으로 인한 공부는 오래가지 못하고 오히려 학생에게 큰 부담을 줘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 대학에 가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 학습 동기와 흥미를 찾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자기주도적인 공부라야 오래간다. 아이는 공부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치우 ㅣ 비상교육 입시평가소장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 대학에 가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 학습 동기와 흥미를 찾는 게 중요하다. 자기주도적인 공부라야 오래간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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