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 ㅣ 서울 유석초 교사
가끔 제자들에게 연락이 온다. 선생님이 그립다는 건, 지금 힘들다는 의미다.
몇년 만에 영철(가명)에게 연락이 왔다. 퇴근 후 식당에서 만났다. 국밥을 시키고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지냈니?” “그냥요.” “밥 든든히 먹어라. 그럼 버틸 수 있다.” “네~”
별말은 없었지만, 잠시나마 숨 돌리러 온 듯했다. 영철이는 5학년 때 처음 자해를 했다. 죽으려고 한 건 아니었다. 그냥 집에 있으면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아서 연필로 손바닥을 찔렀다. 자해는 중독성이 있어 심리적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습관적으로 반복하게 된다. 자해를 하는 순간 일시적으로 해방감을 느끼면서 행위 자체에 무감각해진다.
2018년 교육부 ‘학생 정서·행동특성검사’ 결과를 보면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의 9.77%가 자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 검사는 4월에 실시된다. 곧 이제 중학교에 올라온 지 40여일밖에 안 되는 아이들의 약 10%가 자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것이다. 이는 자해 첫 경험이 초등 5~6학년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뜻이다.
자해하는 아이들의 이유는 대부분 한 가지로 요약된다.
“너무 힘든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요.”
자해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그 행동을 멈추게 해야겠다는 데 초점을 두면 방향성을 잃게 된다. 아이들이 자해를 하는 이유는 심리적 상처와 어려움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해 행동이 아니라 심리적 상처에 대응하지 못하는 데 있다. 자녀가 자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많은 부모들이 이렇게 말한다.
“너 이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아?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어!”
사실 그 순간 그 아이들이 기다리는 말은 ‘자해’에 대한 말이 아니다. 내가 얼마나 힘들고 답답한지 알아주는 말이다.
“팔에 상처가 있구나. 그동안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으면…. 몰랐구나.”
환경적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스트레스 요소를 낮춰줘야 한다. 해도 해도 끝없는 숙제와 선행학습은 갚아도 갚아도 불어나는 이자처럼 아이들을 짓누른다.
그나마 학교에서 쉬는 시간, 점심 시간에 친구랑 놀며 풀 수 있었는데, 코로나19로 1년 가까이 집에만 있으면서 해소할 무언가를 찾기 어려워졌다.
자해를 한다는 건, 이미 내 존재 가치를 훼손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심리적으로 매우 힘든 상태다. 이때 아이들이 ‘혼자’라고 느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자해를 하는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그들은 지독히 외로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