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가 ‘어르신’이라 부르는 시니어들은 100세 시대를 처음 맞이하는 세대다. 노후 대비와 노후 설계라는 개념도 생소하던 시절을 거쳐, 어느새 당혹스럽게 은퇴가 다가와버린 이들을 위해 제2의 삶을 설계해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시니어플래너다.
"변화하는 시대에는 노인의 모습 또한 변해야 합니다"
국내 1호 시니어플래너, 리봄교육 조연미 대표
‘네이버 주니어’는 있는데, 왜 ‘네이버 시니어’는 없을까?
Q. ‘시니어플래너’라는 직업을 직접 만드셨어요. 어떻게 창직을 하게 되셨나요?
이전에는 온라인 게임 회사 대표였어요. 온라인 서비스는 분명 매력적이지만, 게임이라는 콘텐츠는 내가 계속 좋아하기는 어려운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 또래를 위한, 다가올 100세 시대를 맞이해 시니어들을 위한 온라인 서비스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했죠.
Q. 시니어 포털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거로군요.
제대로 뭔가 만들어보려고 20~30대 개발자와 미팅을 해보니, ‘온라인은 우리 세대 것’이라는 생각이 깊이 박혀 있었어요. 그렇다면 차라리 내가 직접 만들어보자 싶었습니다. 기자와 카피라이터로 일한 경험 덕에 검색이나 글 솜씨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를 맞이한 외국의 정보를 찾고,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포털 사이트에 카페를 개설해 해외 시니어 문화, 비즈니스, 정책 자료를 틈틈이 올리기 시작했고요.
Q. 그게 시니어플래너로서의 첫 활동이 된 거네요.
맞아요. 나름대로 고급 데이터가 모이다 보니, 이번에는 또 ‘왜 이런 고급 정보를 무료로 배포하느냐’하면서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얘기가 들리더군요.(웃음) 그래서 이를 뉴스레터로 만들어 <시니어 통>을 배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2007년 일이네요. 시니어 문화에 관해 알려진 것이 없었던 당시에는 ‘노후 계획’이라고 해봤자 자산 관리에만 그치던 때였어요. 노인들이 어떻게 살면 좋을지, 그 활동에 대한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거든요. 이에 갈증을 느꼈던 많은 시니어들과 연구자들이 제 게시글에 관심을 보이면서 여러 기관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어요. 그렇게 시니어 산업에서 가능성을 엿보고 업무 영역을 상담과 교육 등으로 확대하게 됐습니다.
Q. 노인들이 더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시니어플래너의 일이라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능동적으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일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주는 겁니다. 요즘은 스마트폰과 인터넷 없이는 살기 힘든 시대예요. 그런데 스마트폰이라는 기기만 가지고 있지, 활용하는 방법은 모르는 어르신들이 대다수죠. 저는 여기에 주목해, 어르신이 어르신에게 스마트폰 활용법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될 수 있는 강의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같은 세대가 모여서 가르쳐야 교육의 속도가 비슷해져서 교육 효과가 높아지거든요. 또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활용하게 되면 이제는 강사를 넘어서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SNS의 기자로도 활동할 수 있고요. 확실히 동기부여가 되니 더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습득하는 시간도 훨씬 빨라지더군요.
Q. 어르신들에게는 현대사회에서 꼭 필요한 기술을 배우면서 직업까지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겠어요. 프로그램에는 무료로 참가할 수 있나요?
적은 돈이나마 참가비를 내는 열의를 지닌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참가자분들에게는 ‘세금으로 만든 국가 교육과 투자를 받은 분들이니 이후에는 국가 장학생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재능기부를 하셔야 한다’고 꼭 말씀을 드려요.
사실 시니어의 진짜 욕구가 무엇인지, 정부나 기관은 잘 모르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고, 정말 필요한 사업을 만들어줄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받죠. 정부는 노년
의 삶의 질을 보장할 의무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시니어들에게는 이렇게 만들어진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홍보하고요.
서울시는 ‘50플러스 재단’을 만들어 50살 이후의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교육과 일자리, 여가와 문화생활 프로그램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50플러스 포털(www.50plus.or.kr)에서 각 지역별 활동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제공 조연미
시니어의 자립이야말로 모든 세대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
Q. 시니어플래너라는 직업은 고용노동부가 ‘중장년을 위한 유망 직업’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더 젊은 세대들이 발들일 공간이 있을까요?
어마어마하게 만들어지는 정부의 노인 지원 정책과 예산으로 시니어 산업은 날이 갈수록 전망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더 젊은 친구들이 이 산업에 들어와야죠. 정부 지원의 물꼬를 터서 시니어 커뮤니티와 프로그램을 만들고, 기업의 사회적 공헌 사업에 참여하거나 퇴직자를 위한 강연과 교육, 컨설팅 등 여러 방면으로 시니어플래너로서 이름을 알릴 수 있으니까요.
Q. 시니어플래너 자격증을 꼭 따지 않아도 일할 수 있나요?
자격증이 없더라도 1인 기업이나 사회적 기업, 민간단체를 만들어서 활동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평생교육법, 바우처제도, 노인일자리 사업 등 정부가 시니어들을 위해 만들어진 법, 제도를 잘 아는 청년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린 직업이랍니다.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자라거나 대가족의 구성원이었던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곁에서 여러 어르신들을 관찰해왔기 때문에 시니어 산업에 아주 적합한 인재입니다. 노인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면 시니어 제품과 서비스로서의 완성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따라서 노인복지학과, 사회복지학과, 실버산업학과 등 관련 학과에서 노인, 노령화에 대한 기초 지식을 배워둔다면 시니어플래너로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Q. 그래서 실버산업을 일명 ‘효자가 성공하는 산업’이라고들 하는군요.
맞아요. 어르신을 돕고 싶은 마음이 있고, 프로그램 기획력과 창의력이 뛰어난 친구들은 더 나아가 시니어를 타깃으로 한 회사의 CEO, 또는 마케터가 될 수 있어요. 시니어플래너는 그들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타깃 그룹들을 소개해주고요. 예를 들어 제품 디자이너라면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할머니를 떠올리며 멋쟁이 노년들을 위해 아름답게 세공한 지팡이를 제작하고,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는 시니어들이 더 아름답게 나올 수 있는 보정법이 담긴 카메라 앱을 개발하는 식이죠.
Q. 관심만 있다면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모든 산업의 문이 열려있는 거로군요. 노인을 그저 ‘뒷방 늙은이’처럼 힘없고, 도와야하는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 문제였네요.
시니어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활발하게 일하고 봉사하는 어엿한 사회인으로 다시 일어서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건강 상태에도 신경을 쓰게 됩니다. 이는 보건복지 차원에서도 큰 도움이 되죠. 또,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손주의 공부를 방해하는 물건’이라고만 생각했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디지털 기기를 배우게 된다면 서로를 이해 못 해서 생긴 세대 간의 갈등도 훨씬 줄어들고요. 젊은 세대와 시니어 세대를 잇는 다리가 되어줄 수 있는 시니어플래너라는 직업에 관심이 생겼다면 언제든 리봄교육 사무실로 놀러 오세요!
커뮤니티에 하나, 둘 업로드한 게시물에서 시작해 전국 시니어들의 스마트한 삶을 위한 교육과 사회공헌 활동을 책임지는 시니어플래너 양성소가 된 ‘리봄교육(www.seniorplanner.co.kr)’. 사진 제공 조연미
글 전정아 · 사진 손홍주, 조연미
전정아 MODU매거진 기자 jeonga718@modu1318.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