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심리상담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노인’이다. 노인심리상담은 시니어들이 살아온 장기간의 인생을 다뤄야 하고 그들의 배우자, 자녀, 손주 등 3대 이상의 가족 이야기를 들어야 하기 때문에 어떤 상담보다 숙련도가 필요하다. 상담사의 꽃, 노인심리상담사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노인 인구의 계속적인 증가
OECD 통계에 따르면 2017년 한국인 평균 기대수명은 82.7년이다. 불과 7년 전 평균 기대수명이 76세였던 것과 비교했을 때 6.7년이나 늘어났다. 이에 따라 노인의 정의도 달라졌다. 기획재정부는 청소년은 13~18세, 청년은 19~29세, 중·장년은 30~64세, 노년은 65세 이상으로 생애주기를 규정했다. 더 이상 60세, 즉 환갑은 ‘노인의 나이’가 아니다. 2019년 통계청은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처음으로 전체 인구의 15%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노인심리상담사라는 직업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생겨났다. 고령화 시대, 노인 인구 비율은 계속 늘어날 것이기에 삶의 질을 보장하는 정서적 안정을 위한 심리상담은 이제 청년보다 노인을 타깃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동안의 심리상담은 청소년에서 청년까지를 주 대상으로 발전해왔다면, 앞으로는 노인심리상담 분야가 활발해질 전망이다.
많은 전문가가 생성되지 않은 블루오션
노인심리상담은 영·유아, 청소년 등의 심리상담과 비교하여 역사가 짧아 전문가들이 많은 편은 아니다. 노인심리상담사가 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심리 관련 학과를 졸업하되 노인을 전공으로 하고, 관련 학회에서 상담자격을 따야 한다. 현재 국내에는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상담학회, 가족치료학회, 한국기독상담심리학회 네 개의 학회에서 노인 상담분과를 갖추고 있다.
다만 노인심리상담사 자격을 땄다고 해서 바로 상담사로 활동하기는 힘들다. 노년층의 인생 경험은 상담자보다 훨씬 풍부하므로 신뢰 있는 상담을 위해서는 충분한 임상훈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인 관련 센터나 복지관에서 실무를 경험하거나 상담 경력이 있어야 노인심리상담 관련 직업에서 활동할 수 있다. 사회복지사가 노인심리상담사 자격을 갖추고 현장에 투입되기도 한다. 주로 노인복지관, 요양보호시설, 노인전문병원이나 노인교실 등에서 일하며, 임상심리사 자격을 얻으면 산업카운슬러(EAP)로 산업 내 고령자관리 업무를 담당할 수도 있다.
노인심리상담은 나이가 많다고 해서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노인을 잘 이해해야 하고 노인의 사회적·환경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고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을 생각해볼 나이이거나 질병을 앓고 있는 내담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존재론적인 고민도 함께 나누어야 한다. 노인심리상담사는 실버세대의 마음을 위로하고, 그들이 생각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함께 짊어지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 노인심리상담사가 말하는 직업 이야기
“더 많은 노인이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꿉니다”
한국노인상담센터 이호선 센터장
이호선 한국노인상담센터장은 싸우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던 부모님이 노년기가 되자 트러블이 생기는 것을 목격한 이후로 전공을 바꿔 상담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넘치는 에너지로 내담자를 상담하는 노인문제 전문가, 이호선 한국노인상담센터장을 만나 노인상담에 대해 폭넓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노인심리상담이 일반 심리상담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대상이 노인으로 특정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다릅니다. 장기간의 인생을 다뤄야 하고, 긴 과거를 관리하여 미래를 잘 계획하는 데에도 힘을 쏟아야 하죠. 대부분 내담자의 평균적 신체기능이 저하되어 있으며, 배우자 상실의 경험을 겪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일반심리상담과 다른 점입니다. 또, 노인상담은 의료보험 혜택이 없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이 아주 중요한 요소로 꼽혀요. 가격이 너무 비싸면 (장기적으로 치료해야 하는 심리상담의 특성상) 상담의 효과를 보기 힘들고, 반대로 너무 저렴하거나 무료이면 ‘아무 때나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문제가 있는데도 내담하지 않거나 무료이기에 효과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여 치료 효율이 떨어집니다.
노인심리상담사는 무슨 일을 하나요? 하루 일과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학교에 출근하거나 방송활동, 칼럼을 쓰기도 하지만 상담사로서 일주일에 사흘은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루 종일 상담을 합니다. 필요할 때는 인형이나 모래, 피규어 등을 사용해 내담자를 치료하기도 하는데요.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전화 상담이나 화상 상담을 주로 하지만, 노인상담의 특성상 비대면 상담을 꺼리는 편이라 수요가 많지는 않아요. 비는 시간이 생길 때는 상담일지를 정리하거나 앞선 상담이 다음 상담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해 마음을 정리해요.
또, 상담을 하며 변호사나 세무사, 정신과 의사와 협업할 때가 있습니다. 황혼이혼과 관련된 위자료 문제와 그에 따른 세금 문제, 혹은 약물치료가 필요할 때는 관련 전문가와 연계하여 일하기도 하고요.
그동안 많은 어르신을 만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사별증후군을 겪던 한 내담자가 저와 3년 반 정도 상담을 하며 차도를 보이다가, 결국 새로운 사랑을 찾아 결혼하셨던 사례가 생각이 나네요. 제가 그 결혼식에 주례를 서기도 하면서 기쁜 마음과 각별함이 있었는데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아내분이 돌아가셨어요. 현재는 슬픔이 많이 치유되셨지만, 두 번의 상처를 겪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센터장님만의 상담 노하우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나의 강점을 잘 활용하여 상담하는 ‘강점 관점 상담’을 합니다. 저는 에너지를 밝고, 따뜻하고 힘차게 쓰는 데 주력하는데요. 그래서인지 내담자들에게 ‘에너지를 받아간다’는 소리를 종종 듣습니다. 만약 하루 종일 우울감을 가진 내담자가 방문하여 정서가 힘들어질 때면 3분짜리 모래시계를 뒤집어 제 마음속의 벨을 울립니다. 학교 수업을 1, 2교시로 나누는 것처럼 감정의 스펀지를 3분 동안 짜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음 내담자를 맞이하는 거죠.
또, 객관성을 잃지 않기 위해 다른 상담사와 함께 상담 자료를 분석하고 서로 조언을 해주는 슈퍼비전 과정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사례에 대한 관리·분석능력을 잃지 않기 위해 하는 노력이죠. 상담자가 심리적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 내담자와의 상담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다른 전문가에게 찾아가 상담도 받습니다.
노인심리상담사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조언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노인복지센터, 노인복지관을 먼저 방문해보세요. 무엇보다 나의 눈으로 노인을 먼저 관찰하고 내가 가진 노인에 대한 태도나 마음가짐을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복지관에 가면 노인심리상담사가 현장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도 관찰해볼 수 있겠죠? 어르신들에게 ‘내가 노인상담사가 되면 어떨 것 같은지’ 여쭤보면 이 직업의 수요가 얼마나 많은지도 피부로 느끼게 될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고, 누구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노인심리상담사의 직업적 전망은 밝습니다. 청년들이 노인치료에 앞장서서 나아간다면 그것보다 아름다운 그림이 없을 거예요. 청년이 노인을 품는 세대 통합의 꿈을 함께 꾸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은주 MODU매거진 기자 silver@modu1318.com
글 김나래 ‧ 사진 손홍주, 게티이미지뱅크 ‧ 진행 이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