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구의 ‘취학 전 천권 읽기’ 프로그램
어릴 때부터 책 가까이하기 위해
5~7살 대상 ‘하루 한권씩 읽기’
전체 대상자의 3분의 1 넘게 참여
부모독서교육 프로그램도 진행
백설(36)씨는 매일 아들 황윤우(5)군과 함께 책을 읽는다. 지난해 7월 시작해 8개월여가 지난 14일까지 읽은 책이 모두 3000권에 육박한다. 계기는 서울 중랑구립도서관 누리집에서 알게 된 ‘취학 전 천권 읽기’였다. 코로나로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답답해하는 윤우를 보면서 하루 종일 아이와 뭘 하며 지내야 할지, 어떻게 하면 하루라는 시간을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을지 고민이 많던 때였다. ‘취학 전 천권 읽기’는 5~7살 어린이를 대상으로 매일 한권씩 책을 읽자는 취지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5살에 시작하면 7살까지 3년 동안 1000권을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빌려와 매일 윤우에게 읽어주고, 매주 2~3번은 독후활동으로 미술놀이, 과학놀이, 요리활동 등을 했다. 그림책의 70~80%는 윤우가 골랐고, 나머지는 백씨가 추천했다. 그림책 한권을 읽어주려면 책에 따라 5~30분이 걸린다. 이렇게 해서 4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드디어 1000권을 돌파했다.
“역사, 인물, 상상, 과학, 자연 등의 주제로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다양한 분야의 그림책을 골고루 경험해보면서 윤우가 책 읽는 즐거움과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았어요. 또 윤우가 말이 살짝 느렸는데, 단어 선택이나 표현력 등 언어적으로 많이 좋아지는 것이 보여 정말 기쁘고 뿌듯했죠.”
가족 모두가 처음 캠핑에 도전하게 하고, 이후 캠핑을 통해 많은 추억을 만들고 있는 것도 윤우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 <아빠, 악어를 조심하세요!> 덕분이었다.
“어느 땐 책꽂이에서 자기 키의 반이나 되는 만큼의 책을 꺼내 와서 저와 아빠 목을 쉬게 만드는 일도 있었고, 잠잘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책을 더 읽겠다며 울어 곤란한 날도 많았지만 윤우를 품에 안고 그림책을 읽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시간은 나중에 저에게도 윤우에게도 정말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중랑구 6개 구립도서관과 18개 공립 작은도서관 등 24개 도서관에서 ‘천권 읽기, 아이의 미래를 바꾼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에는 현재 26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구의 5~7살 어린이 7400여명 중 3분의 1이 넘는 인원이다. 구에 있는 어린이집, 유치원 등 유아교육기관 260곳 가운데 27곳이 참여하고 있으며, 참여 의사를 밝힌 곳도 30여곳이다. 2018년 시작한 이후 모두 81명이 1000권을 채워 ‘취학 전 천권 읽기 달성 축제’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시상식에서 인증서와 선물을 받았다.
배은빈(7)군의 어머니 이은미(42)씨는 “은빈이가 1000권을 다 읽고도 책이 재미있다며 아침에 일어나 텔레비전을 켜거나 스마트폰을 찾기보다는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며 취학 전 천권 읽기를 시작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을 시작한 조진숙 전 중랑구립정보도서관장은 “아이들이 고학년이 될수록 문해력이 많이 떨어지는데, 문해력을 향상시키려면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히게 하면 어떨까, 그러면서 성취감도 느끼고 재미도 느끼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 이 프로그램을 고안하게 됐다”고 했다.
어린이들의 성취감을 위해 100권, 300권, 500권, 700권, 1000권 등 5단계로 구분해 단계마다 달성 배지와 독서여권, 독서기록장을 준다. 독서여권엔 읽은 책의 권수만큼 스탬프 도장을 찍고, 독서기록장엔 읽은 책의 제목과 날짜 등을 기록한다. 6살 때까지는 부모가 읽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7살이 되면 혼자 읽는 아이들이 생겨난다고 한다.
구립·공립도서관 사서와 학교도서관 사서, 학부모, 독서전문가, 서점 주인 등으로 ‘자료선정위원회’를 구성해 매년 100권씩 추천도서도 정한다. 5~7살 어린이들이 흥미를 느끼는 주제 20개를 정해 주제별로 고른 책들이다. 100권을 선정하는 건, 1000권을 선정할 경우 읽는 책이 획일적으로 한정될 우려가 있어서다.
중랑구의 각 도서관에는 1000권을 달성한 어린이 33명의 캐리커처와 이름, 추천도서가 적힌 대형 포스터가 붙어 있다. 지난해부터 이 프로그램을 주관하고 있는 이지유 중랑숲어린이도서관장은 “어린이들이 포스터에 캐리커처가 실리는 것을 굉장히 영광스럽게 여긴다”고 전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도서관에서 키우는 우리 아이’라는 이름으로 부모독서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0차례 진행돼 모두 205명이 참여한 이 프로그램에는 <그 집 아들 독서법>을 쓴 이지연 저자가 연령에 따라 책을 읽히는 방법 등을 강의하는 등 여러 책의 저자가 강사로 나섰다.
이 관장은 “지난해 너무 반응이 좋아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3개월마다 희망자를 모집해서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20여회 진행한, 동화활동가와 함께 책을 읽고 각종 체험활동도 하는 ‘만지작(作) 꼼지락(樂) 책놀이’ 프로그램도 올해는 100회로 늘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에 찾아가서 진행할 예정이다.
이 관장은 또 새달부터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취학 후 천권 읽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천권 읽기 달성 축제’에 참석한 뒤 류경기 구청장과 간담회를 한 부모들로부터 취학 후에도 책 읽기를 이어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달라는 요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구내 23개 초등학교와 연계해 학년별 목표치를 정하는 방식으로 6년 동안 1000권을 읽는 프로그램이다.
2018년부터 진행한 ‘초등독서토론단’도 더 확대할 예정이다. 5개 반 60명을 모집해 매달 주제를 정해 토론 리더 강사와 함께 책을 읽은 뒤 토론과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올해 1기 모집 때는 10초 만에 마감됐다고 한다. 이 관장은 “초등학생들이 굉장히 재미있어해, 어떤 어머니는 아이 학원 다니던 것 2개를 끊고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했다”고 전했다.
김인현 객원기자 inhyeon01@gmail.com

지난해 8월11일 서울 중랑구립정보도서관에서 한 어린이가 ‘취학 전 천권 읽기 달성 어린이들의 추천도서’ 포스터에 실린 자신의 캐리커처를 가리키며 기뻐하고 있다. 중랑숲어린이도서관 제공

지난해 8월11일 서울 중랑구립정보도서관에서 한 아빠가 아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다. 중랑숲어린이도서관 제공

지난해 8월11일 ‘취학 전 천권 읽기 달성 축제’가 열린 서울 중랑구립정보도서관에서 인증서를 받은 어린이들과 부모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중랑숲어린이도서관 제공

지난해 6월15일 서울 중랑숲어린이도서관에서 열린 ‘초등독서토론단’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이 토론 리더 강사와 함께 읽은 책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중랑숲어린이도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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