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여기에 아이스크림을 던진 걸까?”
점심 식사 후 복도를 지나다가 중학교 3학년 남학생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웃음소리에 눈을 돌려보니 초코아이스크림이 천장과 벽에서 진득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급식 때 나온 아이스크림을 누가 던진 모양이었다. 킬킬거리던 두 아이가 뒷모습을 보이며 교실로 가고 있는 한 남자아이를 가리켰다. 그 아이를 불러 화장실 앞에 마주 섰다.
“녹은 아이스크림을 벽면에 던진 네 마음이 궁금하다.” 말 없는 아이는 낯선 나를 경계하는 듯 눈초리가 날카로웠다.
“나는 올해 전입한 음악 교사, 김선희라고 해. 다른 학년을 담당하고 있어. 여기에 아이스크림을 던진 이유가 있을까?”
“그냥요.” 아이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엷은 미소를 띠었다.
“아, 그냥 했구나. 오염이 된 상태를 보고 있는 지금은 어떤 마음이 들지?”
“모르겠는데요. 저는 이만 교실에 들어가 볼게요.”
“그렇구나. 혹시 내가 네 담당 교사가 아니라 이 일에 관심 두는 게 불편한 걸까?”
아이는 여전히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네게 친숙한 담임선생님이나 3학년 생활지도 담당 선생님과 의논하도록 해줄까?” “….”
“결정이 어렵나 보네. 잠시 생각해보고 있을래?” “네.” “몇 분 정도면 될까?” “5분이요.” “좋아, 나도 좀 걸으며 생각해보고 다시 올게.”
5분 뒤에 다시 만났다. “어때? 나와 더 이야기 나눠볼까?” “네.” “좋아, 던진 데는 이유가 없고 오염된 걸 보고 어떤 마음이 드는지는 아직 모르겠다는 거지?” “네.” “오염된 벽면과 천장은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화장실 청소하시는 분이 있잖아요.” “맞아, 계시지. 그런데 이 큰 학교에 오로지 한 분이 맡고 계셔서 이렇게 예기치 못한 추가 업무가 발생하면 버거우실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거기까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럼 더 생각해보고 있을래? 나도 다시 좀 걷고 올게.”
5분 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떠올랐니?” “제가 닦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런 결정을 했구나. 천장이 높은데 안전하게 닦는 방법을 함께 생각해볼까?” “대걸레를 이용하면 될 것 같아요.” “방법도 생각해뒀네. 시간은 얼마나 필요할까?” “점심시간 마치기 전까지 해볼게요.”
20여분 뒤 다시 돌아와 보니 곁에 있던 두 친구의 자발적인 도움을 받아 대걸레와 손걸레로 벽과 천장을 모두 닦고 청소 도구까지 깨끗이 빨아놓은 뒤였다. “말끔하게 해결했구나? 지금 마음이 어때?” “귀찮고 힘들었어요. 청소하는 분이 대신 맡게 됐다면 무척 화났을 거 같아요.” “그새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도 보게 됐구나. 이 일을 통해 알게 된 점이 더 있을까?” “무심코 하는 행동에도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는 걸 깨달았어요. 앞으로는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좀 더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좋은 생각을 키웠네. 네 지혜로운 문제 해결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서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나도 많이 배웠어.” 아이의 표정에 맑고 순한 자부심이 넘쳐흘렀다.
자칫 “도대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어?”라는 판단을 앞세운 질문이 나올 수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아이들에게는 꽤 많은 상황이 처음일 수 있다. 그와 비슷한 직간접의 경험이 있다 해도 다가온 상대, 또는 그의 대응은 낯설 수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동이 트기 전 못에 배를 띄워 수면에 귀를 대고 가만히 기다렸다가 해가 뜨면서 들려오는 연꽃 봉오리 열리는 소리를 즐겼다고 한다. 아이의 행동을 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잠잠히 지켜봐 준다면 어느새 새벽안개가 걷히며 ‘펑’ 하고 꽃피는 경이로운 순간을 목격할 수 있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맞는 시점과 방향을 스스로 선택할 때 깊게 사고하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다. 훼손되지 않은 건강한 배움은 지속적인 내면의 성장촉진제로 작용한다. 만물이 생동하는 4월을 맞이하여 아름다운 자람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도록 곁을 내주는 소중한 아이들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전해보자.
김선희 |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