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7주기였던 2021년 4월 16일, 성공회대학교 캠퍼스에서 하종강 교수를 만났다. “학생들이 코로나19 이전처럼 있었다면 학교 내 나무에 노란 리본이 가득 걸려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는 그는 대형마트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송곳>의 주요 인물인 ‘구고신’의 모델 중 한 명이다. 사람들에게 노동문제를 알리기 위해 40여 년간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며 노동자 옆에 서온 하종강 교수를 만나 청소년들이 꼭 알아야 하는 우리 사회의 노동 이야기를 나눴다.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하종강 주임교수.사진 손홍주
Mentor’s Profile
하종강
현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성공회대학교 노동대학 제8대 학장,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역임
안산노동대학, 고양노동아카데미 학장
서울중앙지방법원 조정위원
<한겨레> 칼럼니스트 활동
Q. <MODU>의 멘토로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A. 안녕하세요.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로 일하고 있는 하종강입니다. 노동상담을 1981년부터 해왔으니 올해로 딱 40년이 되었네요.
Q.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는 어떤 곳이고, 여기에서는 무슨 공부를 할 수 있나요?
A. 노동아카데미의 원래 명칭은 ‘노동대학’으로, 노동자들이 노동문제를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없어 만든 곳이에요. 2000년부터 시작하여 어느새 21년 차를 맞이했네요. 점차 인문·교양으로 범위를 넓혔고, 노동문제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 누구나 강의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번 학기부터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하는 ‘북한 노동자’를 주제로 여러 강의를 시작할 예정이에요. 그동안 남북한 연구자들이 공동작업으로 남한과 북한 노동자의 삶을 조명하는 연구가 이루어졌었는데, 발표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해요. 개성공단에서 만난 남·북한 노동자의 만남을 조사한 강의 등 6개의 강의가 편성되었습니다.
Q. 웹툰 원작이자 드라마로도 방영된 <송곳>에서 노동 상담소 소장으로 등장하는 ‘구고신’ 캐릭터는 실제 교수님의 이야기를 일부 참고해 만들었다고 들었어요. 구고신이 하는 일과 교수님이 하는 일을 비교해본다면 어떤 점이 비슷하고 다를까요?
A. 가장 큰 차이는 구고신 소장은 공인노무사라는 것입니다. 제가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공인노무사 제도가 없었거든요. 민주노총 같은 큰 노동운동 조직도 없었죠. 그 외에는 비슷합니다. 노동조합 설립하고, 교육하고, 해고된 노동자들의 복직을 위해 변호사 없이도 소송을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의 일을 했어요. 노동자들을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누려면 일단 서로 친해져야 하니 책방에서 만화를 빌려다가 종일 만화를 읽기도 했지요.
Q. 만화를 읽었다니, 재미있네요. 어떤 만화였나요?
A. 여러 노동자와 함께 <베르사유의 장미>를 읽으며 프랑스 혁명에 관한 대화를 나눴고, <올훼스의 창(오르페우스의 창)>을 읽으며 러시아 혁명 이야기도 했죠. 그렇게 친해지고 나면 야학(야간학교)을 꾸려 노동법을 같이 공부했어요.
Q. 노동운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의 역할을 주로 하고 계세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A. 광주 지역의 한 고등학교에서 노동인권에 관한 강의를 마치고 나와서 역으로 가는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의한 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이 옆에 와서 한참 망설이다가 저한테 말을 걸었어요. 어머니가 학교 비정규직 노동조합 활동을 오래 하셨는데, 그게 굉장히 밉고 싫었으나 제 강의를 듣고 어머니가 하시는 일이 좋은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말하더군요.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면서요.
Q. 저도 눈물이 나는 것 같네요. 그렇다면 학생들이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노동문제에 관심이 생긴 학생들이 지금부터 할 수 있는 활동은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세요.
A. 바로 ‘노동’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학생들의 90%는 아마도 자라서 대부분 ‘노동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에요. 노동자라고 말하면 왠지 거부감을 가지거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느끼는 사람들도 아직 있는데요, 영국이나 프랑스에는 판사나 변호사, 소방관, 경찰까지 노조에 가입한 사람들이 많고,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부르는 것을 당연히 여깁니다. 현재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라면 교내 인권 동아리에 가입하거나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해보면 좋겠고요. 또, ‘아수나로’, ‘반딧불이’ 등 지역마다 오래된 청소년 인권단체를 검색해보면 도움이 될 거예요. 그 밖에도 구청이나 시청, 군청 등을 방문하면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2005년 서울 성북구 청소노동자 파업 현장을 방문한 하종강 교수.사진 하종강 제공
Q. 그렇다면 학생들이 꼭 알아야 할 노동지식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A. 반드시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임금체불을 당했을 때 확실하게 청구할 수 있어요. 서면으로 작성하지 않았더라도 ‘시간당 얼마를 주기로 하고, 몇 시간 일하기로 했는지’ 녹음하거나 카톡 증거 화면을 남겨도 됩니다. 친구가 옆에서 함께 들었다는 증언도 증거가 될 수 있어요. (인터뷰 당일인) 오늘은 세월호 참사 7주기인데요. 세월호 선장을 포함해 배를 직접 운전하는 조타수 세 명이 비정규직이었다는 사실을 혹시 아시나요? 게다가 ‘제주도에 다녀와서 근로계약서를 쓰고 일단 일부터 하자’라는 말만 듣고 주먹구구식으로 고용된 사람도 있었죠. 세월호 선박의 위험성을 느끼고 그만둔 노동자들이 정말 많았는데요, 만약 그들이 정규직이었거나 노동조건이 훨씬 안정적이었다면 직장에 좀 더 애정을 가지고 위험요소를 개선할 생각을 했을 거예요. 노동운동가의 시선으로 보는 세월호 사건은 이렇습니다.
Q. 5월은 노동절이 있는 달이라, 전태일 열사와 관련된 영상을 찍으셨다고 들었어요. 전태일 열사는 어떤 분인가요?
A. 전태일 열사는 그를 기억하는 노동운동가들이 “만일 살아계셨다면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라고 했을 정도로 훌륭한 분 이었습니다. <전태일 평전>에도 나오지 않는 일화 하나를 알려드릴게요. 어느 날 방송사 PD가 평화시장의 한 감자탕집에 가서 “혹시 전태일을 아시느냐”고 물었더니,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기 전날까지 올 정도로 단골이었다는 거예요. 전태일 열사가 견습공(시다)들에게 감자탕을 사 주기 위해 자주 데리고 왔었는데, 정작 늘 자신은 먹지 않았대요. 너무 자주 그러니까, 어떤 날은 “이거 공짜다”하고 감자탕을 주었는데도 먹지 않고 돌아가더라는 겁니다. 다음에 전태일 열사에게 “왜 안 먹었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에게 먹었다고 그랬거든요”라고 답하더래요. 공짜라고 먹으면 안 먹은 걸 들키게 되니까…. 이런 이야기가 끝도 없이 나올 만큼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Q. 교수님께 노동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순삭’되었어요.(웃음) 마지막으로 교수님의 꿈이자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솔직히 말하면 없습니다. 제 삶이 주어지는 한 지금 하는 일을 오래 하고 싶어요. 죽기 전에 소설책을 한 권 쓰고 싶었지만, 요즘엔 다른 사람보다 글을 잘 쓸 자신이 없어져서 진작에 포기해버렸어요. ‘노동계의 송해 선생님이 돼라’는 우스갯소리도 들었는데, 그렇게만 되면 여한이 없겠습니다.(웃음)
■ 청소년이 알아두면 도움 되는 틈새 노동 상식
1. 5월 1일은 노동절!
1886년 5월 1일부터 미국 노동자들이 벌인 시위로 7명의 노동자가 사형에 처해졌어. 사형에 처해진 스파이스가 “당신이라도 이 들불은 끌 수 없으리라”고 했던 말처럼, 3년 뒤 프랑스 파리에서 각국의 노동자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여 제2인터내셔널을 설립하고 5월 1일을 세계 노동자의 기념일인 노동절로 삼기로 했어. 우리나라는 1923년부터 기념행사를 열었어. 노동절에는 모든 노동자 (알바노동자 포함)를 위한 유급휴가가 주어지는데, 만일 노동절에 일하게 된다면 평소 하루 일급의 250%를 받아야 한다고 해.
2. 전태일 열사를 기억하자
우리나라 노동운동에 불씨를 붙인 전태일 열사는 훌륭한 노동운동가이기도 했지만 수려한 문장을 구사하는 시인이자 작가로도 기억되었고, 성품도 뛰어나기로 유명했다고 해. 전태일을 다룬 KBS <역사저널 그날> 283회를 보면 전태일의 성품을 잘 느낄 수 있어.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전태일 코스’ 등 노동인권을 원격으로 체험할 수 있는 영상을 개발 중이고 곧 공개한다고 하니 많이 시청해줘. 더 궁금하다면 ‘랜선으로 만나는 노동인권 체험교육’ 동영상을 검색해봐!
3. 청소년을 위한 노동 인권 교양서 <열 가지 당부>
노동과 인권 문제 전문가 10명이 모여 청소년에게 노동문제를 바르게 이해시키고자 만든 책이야. 하종강 교수님은 <노동이라는 단어를 두려워하지 마세요>라는 맨 앞에 나오는 원고에 참여하셨고, 그 외에도 공인노무사가 쓴 근로계약서 작성법부터 의사가 쓴 스트레스 다스리는 법까지 나와 있어. 알바를 하거나 현장실습을 나가는 청소년들을 위한 조언도 있으니 한번 읽어보자.
이은주 MODU매거진 기자 silver@modu1318.com
글 김나래 · 사진 손홍주, 게티이미지뱅크, 하종강 제공 · 정리 이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