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다윗’들이 증거자료 확보를 보다 쉽게 할 수 있도록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개인의 입증 부담이 줄어들 거라는 환영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한편에서는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란 반론도 만만찮다.
6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미국의 디스커버리를 참고해 최근 민사소송법(민소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증거개시제도’라고도 불리는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는 원고와 피고 양쪽이 소 제기에 앞서 소송 관련 증거들을 서로 폭넓게 확인(증거조사)할 수 있는 수단이다. 조 의원은 이번 민소법 개정안에 △국익을 해치거나 사생활에 관한 비밀이 적혀있는 문서 등을 제외하고는 소송 당사자나 제3자가 문서제출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문서제출의무를 강화하고 △법원의 제출명령을 따르지 않거나 문서를 훼손한 경우 문서제출을 요구한 쪽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러한 법안이 나온 배경은 개인이 국가·기업·의료기관 등을 상대로 소송을 낼 때 증거자료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민사소송법상 소를 제기한 원고 쪽은 주장하는 사실에 대한 증명 책임을 진다. 가령 병원을 상대로 의료사고 책임을 물으려는 원고는 병원(피고)으로부터 진료기록을 확보해 의료사고가 있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교통사고 손해배상 사건에선 소송 당사자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병원(제3자)을 상대로 진료기록을 받아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데 개인이 국가나 대기업·병원에 자료를 요청해도 관련 기관에서 이를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 소송에 어려움을 겪거나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조 의원 등은 발의안에서 “문서제출명령을 활성화해 증거의 구조적 쏠림 현상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변호사업계에서는 증거확보가 보다 용이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달 28일 “금융, 의료, 환경, 기술유출 등 소송에서 핵심 증거들은 금융기관, 의료기관 등 한쪽 당사자에게 집중되어 있어 정작 피해자가 이들을 상대로 과실책임을 입증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재판에서 패소하거나 유의미한 판결을 얻지 못하는 등 실질적 권리구제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며 “그동안 사법불신의 실마리를 제공해 왔던 소송 절차상 불평등을 해소해 피해자의 효과적인 권리구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지방변호사회도 “(법안이 통과되면) 증거의 쏠림현상이 개선돼 소송 과정에서 당사자 간 실질적 평등이 한층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실효성이 얼마나 클지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어느 한쪽이 문서제출명령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반대편의 주장을 반드시 사실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의 ‘자유심증’에 따라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기업 상대 소송을 여러 차례 제기했던 한 변호사는 “지금도 문서제출명령을 받은 (피고) 쪽이 명령에 응하지 않은 경우 법원은 원고의 주장에 대해 진실하다고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법 조항이 있긴 하다”면서도 “강제조항이 아니기 때문에 재판부가 어떻게 판단할지는 재판부 마음에 달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변호사도 “진일보한 개정안인 것은 맞지만, 문제의 본질은 증거를 제출하게 해 법원이 보고 판단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며 “이 개정안만으로는 지금의 증거 쏠림 문제 및 이로 인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어 보인다”고 짚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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