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경찰청이 지난해 9월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뒤 북한군에 피격돼 숨진 공무원의 사생활에 대해 공개한 것은 인권 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7일 “해경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사망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고인의 사생활을 상세히 공개하고, 정신적 공황 상태라고 표현한 행위는 피해자와 유족의 인격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인권위는 해양경찰청장에게 당시 해경 수사정보국장과 형사과장을 경고 조치하고, 직무교육 등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피격 공무원의 아들은 해경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고인의 금융거래 내역을 공개하고 ‘정신적 공황’ 상태였다고 표현한 것은 인권 침해라며 김홍희 해양경찰청장과 당시 윤성현 수사정보국장, 김태균 형사과장을 상대로 지난해 11월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페이스북에 ‘월북을 감행할 경우 사살하기도 한다'는 취지의 글을 쓴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해서도 “고인의 생명을 경시했고, 이와 같은 발언이 다수의 언론에 보도돼 정신적 피해를 겪었다”며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해경은 “언론에서 피해자의 채무·도박에 관한 의혹 제기가 있어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사실을 확인해줄 필요가 있었다”며 “도박 횟수·금액·채무 상황을 밝힌 것은 월북 동기를 밝히기 위한 불가피한 설명”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도박·채무 등에 관한 내용은 실종되기 전 중요한 행적으로 공익을 위해 불가피하게 공개해야 하는 내용”이라며 “공개 목적의 정당성, 공개 내용의 상당성 등 과잉금지 원칙을 위배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일부 언론에서 피해자의 채무 상황 등에 대한 추측 보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에 대한 공개가 정당화될 수 없다”며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권위는 “실종 동기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수사의 필요성과 수사의 공개 대상은 완전히 별개”라며 “고인의 채무 상황 등에 대한 수사 내용은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의 영역이고 명예와도 직접적이고 밀접하게 관련되므로 국민의 알 권리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해경의 발표 내용이 충분한 자료나 신뢰할 만한 전문가 의견 등에 근거한 객관적인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인권위는 2차 중간수사 당시 해경이 발표한 채무 금액은 이후 수사에서 확인된 것과 차이가 있었고, 도박 채무액의 경우 2배 이상 부풀려 발표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또 해경이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도피의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발표한 데 대해서도 일부 전문가의 의견일 뿐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편 인권위는 신동근 의원을 상대로 제기된 진정에 대해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단순히 정치적 주장을 한 것에 불과하므로 이를 국회의원의 업무수행과 관련된 인권 침해로 보기 어렵다”며 각하했다.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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