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다 참기 어려워 대표에게 보고했더니, 대표는 신고 다음 날 바로 저를 해고했습니다. 하지만 5인 미만 기업이라는 것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직장인 ㄱ씨)
“회식 때마다 술을 억지로 먹게 합니다. ‘상사가 들어오면 일하다가도 멈추고 일어나서 인사를 해라’거나 ‘조직에서는 상명하복의 원칙이 있다. 지시와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말도 합니다. 정말 힘듭니다.” (직장인 ㄴ씨)
오는 16일이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되지만, 여전히 직장인 10명 중 3명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1일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은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갑질 감수성 지표 및 직장 내 괴롭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지난달 10일부터 17일 사이에 진행됐다.
조사 결과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사람이 32.9%에 이르렀다. 지난 3월(32.5%)과 지난해 9월(36.0%), 12월(34.1%)과 비슷한 수준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응답자 가운데 33.1%는 괴롭힘 정도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52.1%), 임금 월 150만원 미만(37.5%), 20대(39.3%)에서 ‘심각하다’고 응답한 비중이 컸다. 300인 이상 사업장(32.8%), 임금 월 500만원 이상(19.5%), 50대(29.3%)에선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았다.
괴롭힘 행위를 한 사람은 ‘임원이 아닌 상급자’가 44.1%로 가장 많았고, 대표 등 사용자(23.4%), 비슷한 직급의 동료(21.0%) 순으로 나타났다. 원청업체 관리자 또는 직원(3%), 사용자의 친인척(2.4%) 등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적용되지 않는 행위자도 9.4%에 이르렀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을 때 대응(복수응답 허용)으로는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가 68.4%로 가장 많았고, ‘개인 또는 동료들과 항의했다’(30.7%), ‘회사를 그만뒀다’(19.5%) 등의 순이었다. ‘회사, 노동조합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2.4%, ‘고용노동부, 국가인권위, 국민권익위 등 관련 기관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3.0%에 불과했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로는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62.3%),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27.2%) 등이 꼽혔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괴롭힘이 줄었다’는 응답은 53.3%로 ‘줄어들지 않았다’(46.7%)보다 많았다. 다만, 20대(56.3%)와 여성(50.6%)은 ‘줄어들지 않았다’는 응답자가 ‘줄었다’는 응답자보다 많았다.
직장 내 괴롭힘을 인지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직장갑질 감수성 점수’는 평균 71점으로 지난해 69.2점, 2019년 68.4점보다 소폭 높아졌다. 직장갑질 감수성 점수는 ‘상사가 화가 났다면 심한 언사(욕)를 할 수도 있다’, ‘몸이 아프면 병가나 연차를 쓰는 게 당연하다’ 등 직장에서 겪을 수 있는 상황을 30개 문항으로 구성해 동의하는 정도를 5점 척도로 수치화한 것으로, 점수가 높을수록 감수성이 높다.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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