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세계노동절 대회’에 검은 우산을 쓰고 행진에 참여했던 레이테크코리아 노동자들. 박종식 기자
노동조합 소속 직원들을 부당하게 인사 조처하고 ‘보디캠’(몸에 부착한 카메라)을 달고 다니며 노조원들을 무단 촬영하는 등 노조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문구용 스티커 제조사 레이테크코리아 대표가 최근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서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고 있다. 재판부는 “진지한 반성”을 이유로 이 회사 대표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지만, 정작 피해자 쪽에서는 “반성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반응을 내놓는 상황이다. 앞서 이 회사는 오랜 시간 노조와 갈등을 빚으며 관련 민사소송과 행정소송에서도 모두 패소한 바 있다.
18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9단독 이원중 부장판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아무개(36) 레이테크코리아 대표에게 최근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행 내용과 경위, 범행 기간, 노동자들의 피해 정도, 미지급 임금 규모에 비춰보면 범행의 내용이 좋지 않다”면서도 “임씨가 자신의 잘못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는 점, 미지급 임금이 모두 지급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1심 판결문과 이 사건 관련 민사·행정소송 판결문을 보면, 레이테크코리아 노사갈등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회사 포장부 사원은 대부분 중년 여성들로 최저임금을 받으며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해 6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회사 대표를 맡은 임씨는 이들을 비정규직(계약직)으로 전환하려 했고, 이에 포장부 직원 수십명이 노조를 꾸리면서 회사의 탄압도 시작됐다. 2018년 1월 회사는 포장부 작업장을 일방적으로 폐쇄하고, 10여년 포장업무만 해온 노조원 약 20명을 일방적으로 영업부로 전환 배치했다. 회사가 제시한 영업 업무는 운전을 하지 못하는 노조원들이 10㎏ 정도의 물품이 든 캐리어를 도보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들고 다니면서 납품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앞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와 중앙노동위원회는 이러한 인사발령이 모두 ‘부당 전환배치’에 해당한다고 했고, 지난해 1월 서울행정법원도 “정당한 인사권의 범위를 벗어나 부당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1심 재판부는 임씨의 부당노동행위들을 모두 유죄라고 봤다. △부당한 전환배치를 거부하는 조합원들에게 임씨가 폭언을 하거나 징계 통지서를 남발하며 으름장을 놓은 점, △포장작업에 필요한 책상·의자도 주지 않으면서 작업 일감도 조합원이 경기도 안성에서 작업장이 있는 서울로 직접 가져오게 한 점, △작업장에 폐회로텔레비전(CCTV)를 설치하고 직접 몸에 카메라를 달고 다니면서 조합원들의 모습을 무단으로 영상으로 찍고 감시한 점 등이다. 또한 2018년 9월부터 이들 노조원 19명이 부당해고된 2019년 4월 즈음까지 받아야 했을 임금 약 1억474만원을 체불한 혐의 등도 유죄로 인정했다. 하지만 임씨가 미지급 임금을 모두 노조원에게 지급했으며 반성한다는 점을 참작해 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그러나 노동자들 쪽은 “임씨가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임씨는 1심 선고 직전에야 노조원들에게 문자로 ‘죄송하다’고 밝히며 뒤늦게 임금을 지급했는데, 이는 이번 재판에서 기소된 부분만 지급한 것이고 미지급된 임금이 상당액 남아 있다는 게 노조원들의 설명이다. 또한 회사가 노조원을 부당해고했다고 지노위로부터 판정받은 기간(2019년 4월~2019년 9월)에 지급됐어야 할 임금과 부당배치 전환에 따른 임금 상당액 등 수억원을 지난해 말까지 모두 지급하겠다고 회사쪽이 약속했지만, 현재까지도 지급되지 않았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조합원들을 대리했던 봉하진 변호사는 “(회사 대표가) 정말 반성한다면 체불된 임금을 갚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는 걸 보면 반성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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