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아동·청소년이 자주 찾는 장소에 위치한 ‘리얼돌 체험방’에 납품되는 목적으로 수입된 리얼돌에 대해서는 통관을 보류할 수 있다는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23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강우찬)는 성인용품 수입업체 ㅋ사가 김포공항세관장을 상대로 “수입 통관 보류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통관 보류 처분을 취소하라”며 ㅋ사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리얼돌이 교육환경보호구역 내에서 사용될 것이라는 등의 사정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 경우 통관보류처분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ㅋ사는 지난해 1월 여성 신체와 유사한 모습의 리얼돌 1개를 수입신고했는데 김포공항세관이 통관을 보류하자 소송을 냈다. 이날 재판부는 리얼돌 통관을 허용해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그 근거로 “김포공항세관이 통관 보류를 위한 구체적인 조사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들었다. 재판부는 ‘국민보건 등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통관을 보류할 수 있다’고 규정한 구 관세법 제237조 등에 따라 “해당 물품이 향후 사용될 상황과 사용방법을 고려할 때 풍속을 해할 우려에 관한 구체적인 근거가 있으면 일단 통관을 잠정적으로 보류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 김포공항세관이 해당 리얼돌의 사용처나 유통과정에 대해 따져보지 않는 등 조사가 부족한 상태에서 통관 보류 처분을 했기 때문에 “처분의 실체적 하자가 있다”고 보고 ㅋ사 승소로 판결한 것이다.
재판부는 ‘풍속을 해할 우려’의 대표적인 예로 주택 밀집지역 내 상가, 어린이·청소년이 이용하는 학원 등 시설의 건물에 있는 ‘리얼돌 체험방’을 꼽았다. 재판부는 “어린이나 청소년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에서 리얼돌을 사용해 성매매 유사영업을 하는 리얼돌 체험방에 사용될 우려가 있다는 점에 관해 어느 정도 구체적 근거가 있다면 통관 보류 사유로서의 ‘풍속을 해칠 우려’가 인정된다고 충분히 판단될 수 있다”고 했다.
리얼돌 사용처 등을 기준으로 통관을 보류할 수 있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다수의 리얼돌 통관 보류 사건에서 법원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통관을 허용해야 한다고 해왔다. 2019년 6월 대법원은 “공중에게 성적 혐오감을 줄 만한 성기구가 아니라면 성기구를 음란한 물건으로 취급하여 수입 자체를 금지하는 일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원심의 판단을 받아들였고, 이후 하급심에선 이러한 논리로 리얼돌 수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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