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나오기까지
산이 높으면 계곡도 깊은 것일까.
삼성그룹의 7일 발표는 지난해부터 한국사회를 달궈온 ‘삼성공화국’ 논란에 대한 삼성 쪽의 최종답변으로 보인다. 지난해 사회를 뒤흔들었던 굵직한 사건에는 대부분 삼성의 이름이 빠지지 않았다. 삼성이 단위 기업의 차원을 넘어, 한국의 정계·관계·언론계·학계 등 우리 사회 전반을 휘두르는 거대권력으로 변모했다는 비판도 함께 이어져왔다.
지난해 5월 서울 고려대에서 벌어진 이건희 회장 학위 수여식 소동은 한국 사회에서 삼성이라는 기업이 차지하는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당시 학생들이 삼성의 노조탄압 등에 항의하며 반대시위에 나서면서 부총장 이하 보직교수들의 동반사퇴라는 ‘해프닝’이 벌어졌고, 오히려 논란은 삼성에 눈치보는 대학과 한국사회에 대한 성찰로 번져갔다. 지난해 6월 삼성은 계열 금융회사의 의결권 제한을 강화한 개정 공정거래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면서 ‘일개 기업이 국가 권력에 맞선다’는 여론의 역풍을 맞기도 했다. 7월에는 삼성 관계자가 지난 97년 대선 무렵 대선후보들과 전현직 검사들에게 불법 정치자금과 떡값을 건넨 내용이 담긴 녹취록 ‘엑스파일’이 드러나면서 삼성공화국 논란에 기름을 끼얹었다. 삼성이 서둘러 대국민 사과를 하는 등 진화작업에 나섰지만, 비판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9월에는 ‘금융산업 구조개선 법률’ 개정안 처리과정에서 정부당국의 ‘삼성 봐주기’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악재가 이어지면서, 이건희 회장과 삼성의 경영진은 지난 몇달 동안 해법을 찾기 위해 고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은 국외에 머물고 있는 이 회장을 수차례 찾아가 대책을 논의했고, 지난 4일 이 회장의 귀국으로 논의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해 7일 발표에 이르렀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말 검찰이 ‘엑스파일’ 사건과 관련해 이 회장에게 무혐의 결정을 내렸지만 부실수사 비판과 지배구조 문제 등 삼성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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