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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주노동자 ‘족쇄’ 사업장변경 제한…“헌재 전향적 결정 필요

등록 2021-08-17 16:56수정 2021-08-17 20:46

이주노동자 일터 변경 법으로 제한
사장 허락없인 이직 못해 ‘강제노동’
지난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제기
“이주노동자 직업 선택 자유 보장을”
고용부 “좋은 직장 몰려” 각하 의견
고용허가제 헌법소원 추진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단체, 변호사 등 관계자들이 17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의실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고용허가제 사업장 변경 제한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고용허가제 헌법소원 추진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단체, 변호사 등 관계자들이 17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의실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고용허가제 사업장 변경 제한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스리랑카에서 온 이주노동자 ㄱ씨는 지난해 1월 일하던 가죽공장에서 사고를 겪었다. 보일러가 폭발하면서 2명이 목숨을 잃었고, 8명이 크게 다쳤다. ㄱ씨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사고 이후 불안과 공포가 심해졌다. 사고를 경험한 일터에서 더는 일 하기가 어렵다고 느낀 그는 고용주에게 ‘일터를 옮기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고용주의 반대로 그는 동료들이 숨진 곳에서 반년을 더 일해야 했다. 이후 ㄱ씨가 외부 도움을 받아 대학병원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고서야 고용주는 그의 이직을 허락했다.

2016년 한국에 입국한 네팔 출신 ㄴ씨는 미나리 농장에서 일했다. 계속 몸을 숙인 채로 일하다 보니, 허리가 아파 농장주에게 ‘다른 곳에서 일하고 싶다’며 계약해지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ㄴ씨가 재차 농장 변경을 요청하자 농장주는 돈을 요구했고, 150만원을 건네주고 나서야 농장주는 그의 이직 서류를 써주었다.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에 규정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제한 조항에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주노동자가 일터를 바꾸려면 원칙적으로 사용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이런 조항 탓에 본인 의사와 무관한 ‘강제노동’이 이뤄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2004년 8월17일 고용허가제를 시행하며 국내에서 노동자를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이 정부의 허가를 받아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었다. 외국인 노동자를 ‘산업연수생’으로 데려와 저임금 노동력으로 활용한 산업연수생 제도를 대체해, 이주노동자를 노동자로 받아들인 게 바로 이 제도다. 이주노동자들의 체류 기간은 3년이지만, 한 사업장에서 꾸준히 일한 이들 가운데 일부는 ‘성실 근로자’로 분류돼 최장 9년 8개월 동안 한국에서 일할 수 있게 했다.

문제는 최대 10년 가까이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가 일터를 바꿀 수 있는 경우를 법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외국인고용법 제25조 1항을 보면, 이주노동자가 직장을 옮기기 위해선 △사용자가 먼저 근로계약을 해지하려 하거나 갱신을 거절하는 경우 △사업장 휴업이나 폐업, 사용자가 계약한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위반 등으로 사용자의 고용허가가 취소된 경우 등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만약 이주노동자가 산업재해에 대한 공포, 불편한 근무환경 등으로 일터를 바꾸고 싶으면, 사용자의 동의를 얻거나 고용노동부 고시에 따라 ‘노동자의 책임 없는 사유’임을 입증해야 한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고용노동부는 ‘사업장 변경을 자유롭게 하면 근로조건이 상대적으로 나은 사업장으로 이주노동자들이 몰릴 것이기 때문에 내국인 고용에 악영향을 미치고 인력공급을 고르게 할 수 없다’고 말해왔다”며 “대한민국 헌법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이런 권리를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고용허가제 헌법소원 추진모임’(추진모임)은 지난해 3월 이주노동자 5명을 청구인으로 해 외국인고용법 제25조 1항 등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추진모임은 “해당 조항 헌법에 따른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평등권,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한국이 올해 비준해 내년 4월 발효를 앞둔 국제노동기구(ILO)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과도 충돌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현재 첫 변론기일이 잡히길 기다리고 있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17일 “내국인 노동자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열악한 3디(D) 직종, 소규모 제조업체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에 제한을 둔 것”이라며 “애초에 이주노동자는 해당 사업장에서 일하기 위해 비자를 받고 입국한 것인데, 제한을 풀면 이주노동자들이 여건이 좋은 곳으로만 몰릴 것이다. 헌법소원과 관련해서는 지난해 7~8월 헌법소원을 각하해야 한다는 고용부의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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