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철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2018년 9월 국회의장을 항의 방문한 뒤 의장실을 나서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심재철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 당시 수사기관에 허위 진술을 했다는 내용을 전한 <한겨레>와 기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심 전 의원이 허위라고 지목한 해당 기사들이 그의 예전 진술서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며 “기사 내용이 허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19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서부지법 민사12부(재판장 이병삼)는 심 전 의원이 2019년 9월 <한겨레>와 기자 3명을 상대로 제기한 5천만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지난 13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심 전 의원은 “기사의 허위사실로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가 침해됐다”며 손해배상뿐만 아니라 기사 삭제 등도 요구했지만, 재판부는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 전 의원이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한 기사는 <한겨레>의
2005년 11월27일 기사,
2004년 12월13일 기사 및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의
2018년 10월5일 기사 등 총 3건이다. 이 기사들은 1980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심 전 의원이 당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피의자로서 수사를 받던 중 군 검찰의 가혹 행위로 허위 진술을 했고, 1995년 이를 바로잡는 진술서를 썼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심 전 의원이 문제 삼은 부분은 △그가 치안본부 특수대의 폭력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당시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 공동대표)에게 돈을 받았고,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당시 서울대 복학생협의회장)가 당시 김대중 집권을 위한 거리시위를 지시했다’는 취지의 거짓진술을 했다는 점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공판에서 “김대중씨한테서 20만원을 받았는가”라는 군 검찰의 질문에 “전부 22만원을 받았다”고 허위 증언한 점 △심 전 의원이 나중에 “당시 구타에 못 이겨 허위자백을 했다”고 고백하는 자술서를 썼다는 점 △자술서에서 심 전 의원은 “내가 폭력 앞에 어이없이 무너졌다”는 후회의 뜻을 내비쳤다는 점 등 모두 14군데다.
재판부는 심 전 의원의 자술서를 보관 중인 서울중앙지검을 통해 해당 내용 등을 받아본 뒤 “심 전 의원이 허위라고 주장하는 기사 내용 대부분은 그가 직접 작성한 진술서에 그대로 기재된 내용”이라며 “심 전 의원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기사 내용이 허위라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 판결문을 보면, 심 전 의원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관계자들과 함께 1995년 5월17일 전두환 전 대통령을 내란죄로 고발하며 작성한 진술서 내용이 나온다. 심 전 의원은 진술서를 통해 “김대중씨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받았으며 김대중씨 집을 방문해 기념품을 받고 지시를 받았다는 등을 ‘자백’하라는 것이 본인에게 맞춰진 (1980년 군부 수사의) 첫 번째 목표였다. 그러나 본인은 전혀 그런 사실이 없었다. (중략) 두 번째 목표는 당시 서울대 복학생이던 이해찬 의원으로부터 가두시위 지시를 받았다는 것을 ‘자백’하라는 것이었다. (중략) 그러나 이것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조작을 해나가는 특수대원들 앞에서 본인은 더 이상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했다. 폭력 앞에 어이없이 무너지는 나 자신을 보면서 본인은 심한 부끄러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 밖에도 재판부는 심 전 의원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공판에서 김 전 대통령 쪽으로부터 “전부 22만원을 받았다”고 답변한 게 사실이고, 이를 비롯한 관련자 진술이 내란음모 사건의 유죄 판결 증거로 쓰인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후 신군부의 조작이 밝혀지면서 김 전 대통령 등 이 사건 관련자들은 2004년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심 전 의원은 지난 1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기사가 허위사실이라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19일 오후 의견문을 내어 “재판부가 당시 원고의 진술서, 판결문, 김대중 항소·상고이유서, 증거목록, 공소장 등 60개의 증거를 외면했다. 진술서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오판”이라며 항소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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