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자” “주사파” “종북”.
대법원이 최근 이런 표현이 쓰인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에서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공인에 대한 정치적 이념 등이 담긴 표현은 ‘사실 적시’가 아닌 ‘의견 표명’으로, 헌법상 최대한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법조계에서는 남북 분단 상황과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표현이 갖는 낙인찍기 효과 등은 여전하지만, 강고했던 반공 논리가 힘을 잃어가는 만큼 이런 변화를 반영한 판결 흐름이라고 분석한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16일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발언해 문재인 대통령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고 전 이사장 발언이 공적 인물에 대한 평가나 의견을 밝힌 것에 불과하므로, 이를 구체적 사실의 적시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공인에게 ‘종북’ ‘주사파’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서도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2018년 10월 대법원은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부부가 극우 논객 변희재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누군가를 단순히 ‘종북’이나 ‘주사파’라고 하는 등 부정적인 표현으로 지칭했다고 해서 명예훼손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이런 표현들 모두에 대해 무거운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부정확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표현들은 있기 마련이다. 정치적 표현에 대하여 명예훼손이나 모욕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인정하거나 그 경계가 모호해지면 헌법상 표현의 자유는 공허하고 불안한 기본권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고 전 이사장 사건 판결을 두고 “공론의 장에 나선 공적 인물이나 공적 관심사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는 점을 확인한 판결이다. 사안과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공적 인물에 대한 표현은 일반인 경우와 달리 ‘사실 적시’로 평가하는데 신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표현의 자유를 강력하게 옹호해 온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표현의 자유를 넓게 해석하는 대법원 판결은 바람직하다. 이제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은 이 말을 하는 이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등 열린 표현이 됐다”고 말했다.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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