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질환을 가진 상태에서 공공근로를 하다 숨진 노동자에게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공공근로사업 일용직 노동자 ㄱ씨 유가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 급여 및 장의비를 지급하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뒤집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다.
30년 동안 직업군인으로 복무한 ㄱ씨는 전역 후 비정기적으로 공공근로사업에 참여해왔다. ㄱ씨는 2017년 3월에도 병충해 예방을 위한 나무 주사사업 공공근로에 참여했는데, 출근 첫날 업무 중 갑자기 쓰러져 숨졌다.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이었다. ㄱ씨 가족은 “고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 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이 “기존질환이 악화해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지급을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1심은 ㄱ씨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지만, 항소심은 1심과 달리 공단 쪽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 재판부는 ㄱ씨가 고혈압과 협심증 등으로 진료를 받아왔다는 점, ㄱ씨가 수행한 업무 강도가 과중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등을 들어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 판단이 “업무상 재해의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고 봤다. 대법원은 ㄱ씨 기저질환이 평소 잘 관리되고 있었던 점, ㄱ씨가 영하 6도의 날씨에 9㎏의 천공기를 짊어지고 경사지를 오르내리며 나무에 구멍을 뚫는 고된 작업을 한 점, 점심 후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다시 업무에 투입된 점이 고인 심장에 상당한 부담이 됐을 거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고인이 심혈관질환을 가진 상태에서 추운 날씨에 실외에서 과도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기존 질병이 급격하게 악화돼 급성 심근경색으로 발현됐고, 그 결과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며 파기환송 이유를 밝혔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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