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선원이주노동자.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하루에 15시간 이상 일하는 날이 한 달에 22일 정도이고 하루 22시간 일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일이 많아서 근육통이 심했는데 진료해주지 않았어요. 배 안에 한 개 있는 욕실은 한국인만 사용하는 거라 우리(외국인 선원)는 바닷물을 증류한 물을 받아 식수로 마시고 씻고 빨래를 했어요.”(베트남 국적의 선원 ㄱ씨)
선원 이주노동자들이 고액의 알선비를 내고 빚을 진 상태로 한국 어선에 승선하고, 장시간 노동과 차별 대우에 시달린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선원 이주노동자의 인권 증진을 위해 관련 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30일 인권위는 베트남 국적의 선원 이주노동자 52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실시한 현장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했다. 인권위는 “이주노동자 대다수가 선원으로 고용되는 과정에서 고액의 송출비용(일종의 알선비)을 현지 국가 송출업체에 내면서 빚을 진 상태로 한국 어선에 승선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한 송출업체의 지난해 선원 모집 광고를 보면, 이 업체는 이탈방지 명목으로 집·땅문서를 제출하고 퇴사 후 돌려받을 것과 이탈 보증금을 포함해 약 1천만원의 송출비용을 낼 것을 요구했다. 응답자들은 송출비용 마련을 위해 은행 대출(46.2%·중복 응답)을 받거나 친척 혹은 지인에게 빌렸다(34.6%)고 답했다.
큰돈을 내고 배를 타지만 이들의 노동 환경은 열악했다. 응답자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약 14시간32분이었다. 12시간 이상 18시간 미만 일했다는 응답자가 58.8%(30명)로 가장 많았고, 18시간 이상 일했다는 응답자도 21.6%(11명)에 달했다. 감기 등을 제외하고 일하다 다친 적이 있다는 응답자도 18.4%(9명)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는 손가락을 다쳐 응급처치 후 섬에 가서 치료를 받았으나 시간이 너무 지체돼 손가락을 절단한 사례도 있었다.
이들은 한국인 선원과 차별 대우를 겪는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응답자의 88.5%(46명)는 바닷물을 여과한 물을 식수로 받았는데, 이들 중 36명은 같은 배의 한국인 선원은 생수를 받았다고 답했다. 바닷물을 여과한 물로 몸을 씻는다는 응답자는 70%(36명)였고, 에어컨 냉각기 물로 몸을 씻는다는 응답자도 20%(10명)에 달했다. 외국인 선원이 사용 가능한 화장실은 13.4명당 1개에 불과했다. “짠맛이 나고 색깔이 황색인 물을 마시는데, 한국인들은 병에 든 생수를 마십니다. 우리는 그 생수를 살 수도 없습니다. 몸을 씻을 때도 바닷물을 사용합니다.”(베트남 국적의 선원 ㄴ씨)
이들의 평균 계약서 월급은 1202달러(약 142만5천원)로 한국인 선원의 임금 수준보다 현저히 낮았고, 500달러(약 59만3천원) 미만이라고 답한 응답자도 3명(5.8%) 있었다. 응답자 대다수(96%·50명)는 월급이 밀린 적이 있었고, 13%(7명)는 체불 임금이 있다고 답했다. 베트남 국적의 선원 ㄷ씨는 “한국 배를 타기 위해 빌린 돈이 많은데, 그동안 못 받은 7200달러(약 852만6천원)를 베트남으로 돌아간 후 받을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선원 이주노동자의 인권 증진을 위해 △휴식시간 기준과 합리적인 근로 조건을 법률을 통해 보장할 것 △모집과 고용 절차를 공공기관에서 전담할 것 △‘선원 최저임금 고시’의 차별적인 조항을 삭제할 것 △인권침해와 차별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선원 근로감독, 인권교육, 권리구제 절차를 강화할 것 등을 권고했다.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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