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희(25)씨가 사회인 여자축구 동호회 너티FC 회원들과 함께 축구를 하는 모습. 최현희씨 제공
“이렇게 재밌는 걸 이제야 알았다는 아쉬운 마음 반,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라는 마음 반입니다.”
취업준비생 한여혜(25)씨는 지난 8월부터 매주 1대1 축구 수업을 듣고 있다.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려던 차에 여성들이 팀을 꾸려 축구 대결을 하는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SBS)을 보고 ‘축구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구는 남자들이 하는 운동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기초적인 드리블부터 너무 재밌고 제가 생각보다 잘하더라고요. 왜 나한테는 지금까지 축구를 할 기회가 없었을까,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잘하지 못할 거라 지레짐작한 건 아니었나 싶어 아쉬웠어요.”
최근 <골 때리는 그녀들>이 화제를 모으면서 축구에 도전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7일 축구 경기 매칭 플랫폼 ‘플랩풋볼’ 자료를 보면, 지난해 5035명이었던 여성 회원 수는 올해 9월까지 7856명으로 늘었다. 이예림 플랩풋볼 운영팀장은 “<골 때리는 그녀들> 방영 기간에 신규 참여 문의나 포털 사이트 클릭 수가 유의미하게 늘었다”고 말했다.
개인 운동에 익숙한 여성들은 축구를 시작한 뒤 “팀 스포츠의 매력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지난 3월 혼성 풋살 동호회 활동을 시작한 직장인 이윤경(26)씨는 “요가나 필라테스는 많이 해봤지만 팀 스포츠는 학창시절에 해봤던 피구가 전부였어요. 역할 분담도 안돼 있고 공을 피하기 바쁜 피구와 달리 축구는 서로 협력해 같은 목표를 이뤄낸다는 점에서 훨씬 짜릿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동안 이걸 왜 몰랐나 배신감이 들 정도로 충격을 받았어요.”
기존에 축구를 즐기던 여성들도 최근의 관심이 반갑기만 하다. 2015년 강원대학교에서 직접 여자축구 동아리를 만들고 지금도 일주일에 세번은 동호회 등을 통해 축구를 하는 김가은(26)씨는 “최근 축구장에서 축구를 처음 시작한다는 여성들도 늘고 중학생들처럼 어린 나이에 시작하는 사례도 늘고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최현희(25)씨가 소속된 사회인 여자축구 동호회 너티FC. 최현희씨 제공
하지만 여성들이 축구를 마음껏 즐기려면 갈 길이 멀다. 김씨는 “남성은 어디서나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지만 여성은 저변이 넓지 않아 상대팀 구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대학 여자축구 동아리를 거쳐 사회인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현희(25)씨는 “취미로 축구를 한다고 말하면 ‘여자가 축구를 해요?’라며 신기하게 여기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고 전했다. 여자 축구는 방송 중계로 잘 편성이 되지 않아 최씨는 지난달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 경기를 상대팀 우즈베키스탄 온라인 생중계로 봤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더 많은 여성들이 축구를 즐길 수 있도록 직접 나서고 있다. 최씨는 2019년부터 ‘여자축구의 모든 것’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면서 여자축구 경기 일정 등 관련 정보를 모아 알리고 있다. 여자축구 관련 정보를 찾기 어려워 ‘나라도 직접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다. “지소연(첼시) 선수 경기를 보러 영국에 갔더니 어린 여자아이들이 주택가에서 축구를 하고 있더군요. 우리도 이런 모습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윤경씨도 동호회원들과 의기투합해 축구 관련 상품을 제작하고, 그 수익으로 여성 유소년 축구팀에 후원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여자애들은 원래 축구 같은 운동을 싫어하잖아,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 잘 나가지도 않잖아’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저는 반대라고 생각해요. 여성들이 운동장에 나설 수 없게 하는 환경도 있잖아요. 더 많은 여성들이 학교 운동장에서부터 축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윤경씨(26)가 소속된 사회인 혼성 풋살 동호회. 이윤경씨 제공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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