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지윤(가명)이가 주사를 통해 물을 섭취하고 있다. 고양/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윤(가명·7)이가 칭얼거리자 아빠(37)는 능숙하게 지윤이 배에 달린 위루관에 주사기로 물을 넣었다. 음식을 씹거나 제대로 삼키지 못하는 지윤이는 4살 때부터 위루관으로 영양분을 섭취했다. 지윤이는 목을 살짝 돌리는 정도 외에는 걷거나 몸을 가누지 못했다. 지난달 29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만난 지윤이는 내내 침대에 누워 손이나 옷소매를 입에 넣고 있었다. 매일 소매를 물어뜯다 보니 지윤이의 내의 대부분은 구멍이 나 있다. 지윤이가 할 수 있는 의사 표현은 옹알이와 약간의 표정 변화가 전부지만, 엄마와 아빠는 지윤이가 배가 고픈지, 기분이 좋은지 금방 알아챈다.
지윤이는 중증 뇌병변 장애에 더해 희귀 난치성 질환인 ‘레트 증후군’이 있다. 레트 증후군은 주로 여아에게 나타나는 신경계 발달 질환으로, 보통 출생 후 6~18개월까지는 증상이 보이지 않다가 그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다. 레트 증후군이 있는 아이들은 의사소통이 어렵고, 손뼉치기나 입에 손 넣기 같은 특정한 행동을 아무 목적 없이 반복하는 등 자폐증과 같은 행동을 보인다. 또 다리의 경축(근육 이완 지연) 등으로 제대로 걷지 못하고, 발작을 일으키고 불규칙적으로 호흡하며, 음식을 먹고 삼키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머리의 성장이 느려지는 후천성 소두증이 생기기도 한다.
지윤이에게는 후천성 소두증 등 레트 증후군의 증상 대부분이 나타난다. 레트 증후군의 원인은 아직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학계에서는 가족력과 연관돼 유전되기보다는 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근본적인 치료법은 없고 증상 완화를 위해 각종 치료를 해야 한다.
지윤이의 엄마(36)와 아빠는 비장애인이다. 장애에 대해 전혀 모르던 엄마와 아빠는 지윤이도 당연히 비장애인인 줄로만 알았다.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쯤 됐을 때, 아이의 눈이 사시여서 병원에 다녔지만 그때까지도 ‘시력이 안 좋은가 보다’라고만 생각했다고 한다. 지윤이는 태어난 지 6개월이 지나도 다른 아이들은 100일 때쯤 하는 목 가누기나 뒤집기를 전혀 하지 못했다. 발달이 느린 게 걱정돼 재활의학과를 찾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이 터졌다. 돌 즈음, 아이가 크게 발작을 한 것이다.
“아이가 자다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눈이 돌아가고 겁에 질린 것 같은 얼굴로 소리를 질렀어요. 뭔지도 모르고 달래주다 응급실에 갔더니 발작이라고 했어요. 뇌파 검사를 했더니 수시로 경기를 일으키고 있었던 거예요. 첫아이라 아무것도 몰랐고, 겉으로 봤을 때 크게 티가 나지 않을 때가 많아서 저희는 그게 경기인 줄도 몰랐어요.” 이날 이후 지윤이는 뇌병변 장애 진단을 받았다. 엄마와 아빠는 멀게만 느껴졌던 장애가 내 아이의 이야기라는 말이 청천벽력 같았다고 한다.
하지만 좌절할 여유도 없었다. 지윤이는 돌 이후 4살 때까지 심한 발작을 매달 한두번씩 했다. 잦은 발작과 각종 병으로 매달 적어도 한번, 많게는 세번씩 입원도 했다. 한번 입원하면 기본 일주일씩 병원에서 보냈다. 하도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는 일이 잦아 구급대에서도, 병원에서도 지윤이 이름만 이야기하면 빠르게 준비를 마칠 정도였다. 구급차가 올 때까지는 집에 비치해둔 휴대용 산소호흡기로 계속 산소를 공급해주면서 버텼다. 지윤이가 조용히 발작을 일으키면서 숨을 쉬지 못할 때도 있어 엄마와 아빠는 아이를 지켜보느라 항상 잠을 설치기도 했다.
지윤이는 수없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도 아프다는 표현도 거의 하지 못한다. “의사소통을 잘 못하다 보니 아프다는 표현을 기껏 해봐야 ‘힝’이라고 하면서 울상을 짓는 정도였어요. 다른 아이였으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를 정도로 아팠을 거라는 상황에서도 그렇게만 표현을 하더라고요. 열이 39도로 나도, 주삿바늘로 5번씩 찔려도 울지도 않아요. 가족끼리 지윤이가 저희보다 더 어른이라고 할 정도예요. 엄마 입장에선 차라리 아이가 아프다고 떼를 쓰고 울기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그러지도 않는 게 더 속상하죠.”
지난달 29일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지윤(가명)이의 아버지가 아이의 손을 잡고 있다. 고양/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윤이도 병원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있다. 지윤이는 4살 때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감염증으로 심한 폐렴에 걸려 45일가량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는데, 엄마는 ‘이러다 정말 아이를 보내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수백번도 넘게 했다고 한다. 하루는 “아이가 엄마를 너무 찾는다”고 해 가보니 지윤이가 조용히 눈물을 흘리다 엄마를 보고 눈물을 그쳤다고 한다. “‘아이가 엄마를 찾을 정도의 인지 능력이 없을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갔어요. 아이가 저와 눈을 맞추지도 못하고, 다른 표현도 못 하니까요. 이때 처음으로 ‘지윤이가 표현을 못 해도 엄마를 아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지윤이는 무사히 퇴원했지만, 위루관을 복부에 삽입하게 됐다. 이 무렵 오랜 유전자 검사 끝에 ‘레트 증후군’이라는 정확한 병명도 알게 됐다. 엄마는 언젠가 위루관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라 많이 울었다고 한다. 다행히 위루관 수술 뒤 젖병으로 물이나 특수 분유를 먹던 때보다 영양 섭취가 크게 개선됐다. 돌 무렵 10㎏이 넘었던 지윤이는 계속 발작을 반복하면서 한때 몸무게가 7㎏까지 빠졌고, 6살 초까지 13㎏에 불과했다. 지금은 몸무게가 20㎏으로 늘고 입원 횟수도 줄었다.
올해 지윤이는 특수학급이 있고 간호사가 배치돼 있어 위루관을 관리해줄 수 있는 초등학교를 어렵게 찾아 입학했다. 엄마와 아빠는 매일 위루관을 소독한다. 아이가 목 근육을 계속 사용하고 삼키는 힘이 줄어들지 않도록 젖병으로도 물과 특수 분유를 먹이고 있다. 위루관은 원래 석달에 한번씩 새것으로 교체하는데, 지윤이가 고개를 들고 배에 힘을 주면서 위루관이 터지는 일이 잦아 거의 매달 교체하러 간다.
전세 보증금 치료비로…“음식 맛볼 수 있다면”
아빠 혼자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버는 월 176만원으로는 아이에게 드는 치료비를 감당하기 버겁다. 국악을 배운 엄마는 지윤이를 낳기 전 방과 후 풍물 강사로 일했는데, 지윤이가 태어난 뒤로는 일을 그만둬야 했다. 지윤이가 언제 발작을 일으킬지 몰라 활동지원사에게만 아이를 맡길 수 없는 탓이다. 아빠도 지윤이를 돌보느라 추가 근무수당은 포기했다.
지윤이네는 차상위 계층이지만, 지윤이가 입원하면 비급여 항목인 면역치료 등을 받아야 할 때가 많아 매달 병원비로만 100만원가량 들었다고 한다. 음악치료와 미술치료 비용도 매달 80만원이다. 지윤이가 먹는 특수 분유 비용만 다달이 20만원에, 위루관 소독을 위한 의료용품 비용, 기저귀값 등도 만만치 않다. 결국 부부는 신혼집 전세 보증금 8천만원을 빼 모두 아이 치료비에 쏟아부어야 했다. 지금 지윤이네는 엄마의 친정 오빠 집 방 한칸에 얹혀살고 있다. 그러고도 병원비와 생활비가 모자라 대출을 받았다.
종일 아이를 돌보고, 발작을 일으킬까 봐 몇년 동안 밤에도 제대로 잠들지 못했던 엄마는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아이랑 종일 같이 있는데 아이가 움직이지도 못하고, 아이와 같이 밥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으니까 혼자 있는 기분인 거예요. 아이에게 ‘엄마’라는 말 한번만 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세상이 얼마나 다른지도 깨닫게 됐다. “동선부터 정말 달라요. 장애인 콜택시를 부르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됐죠. ‘얘는 다 컸는데 엄마 힘들게 아직도 유모차를 타고 다니니. 네가 걸어 다녀야지’라고 하는 사람들의 말에도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그래도 엄마와 아빠는 지윤이가 음악치료와 미술치료를 받는 모습을 보며 희망을 얻는다. 치료를 받을 때면 지윤이가 옅은 미소를 띠기 때문이다. 거의 항상 손가락을 빠는 지윤이지만 피아노 등 잔잔한 악기 소리가 나면 손가락 빠는 걸 멈추고 소리에 집중한다. 기분이 좋으면 콧소리를 내고 옹알이를 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혀 근육을 써야 지금보다 잘 먹을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돈이 많이 들지만 치료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지윤이가 분유 말고 다른 맛있는 음식도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만 바랄 뿐입니다.”
지난달 29일 경기도 고양시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지윤(가명)이의 집에 ‘밝은 미소 상’이라고 적힌 상패가 놓여 있다. 고양/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캠페인에 참여하시려면
지윤이 가족에게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기업은행 035-100411-01-456, 예금주: 사회복지법인어린이재단)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1588-1940)으로 문의해주십시오. 모금에 참여한 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으로 연락해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받을 수 있습니다. 모금 목표액은 2000만원입니다. 후원금은 특수 분유 구입비와 치료 부대경비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지윤이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살피며 후원금을 투명하고 성실하게 전달하겠습니다. 2000만원 이상 모금될 경우, 지윤이 보호자의 뜻에 따라 목표액이 넘는 금액은 다른 위기가정 지원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보도 이후
발달장애가 있는 가람이 사연(<한겨레> 9월13일치 9면)이 <한겨레>와 밀알복지재단이 함께한 ‘2021 나눔꽃 캠페인’에 소개된 뒤 817분께서 4881만7129원(10월5일 기준)의 따뜻한 마음을 모아주셨습니다. 밀알복지재단은 “소중한 후원금은 가람이와 가족들의 치료비, 긴급생계비로 전달하겠다. 목표액을 넘은 후원금 중 일부는 가람이와 비슷한 가정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겠다”고 전했습니다. 가람이네 가족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신 후원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