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한 4·3 수형인과 유족들이 7일 오후 제주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4·3 생존수형인과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첫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내용을 뜯어보면 사실상 패소 판결에 가깝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지난 7일 4·3 생존수형인과 유족의 신체적·정신적 고통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했지만, 이 판결에 따르면 원고들이 실제로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금은 사실상 없다. 왜 그럴까.
앞서 4·3 생존수형인 18명은 4·3 당시 유죄 판결을 받은 불법 군사재판에 대해 재심을 청구해 2019년 1월 무죄 취지의 공소기각(공소제기가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4·3 당시 계엄령 아래서 이뤄진 군사재판은 불법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유죄 판결로 감옥에 갇혔던 수형인은 무죄라는 취지다. 2019년 8월 법원은 이들이 최대 11년 동안 억울한 수형 생활을 했다는 점을 인정해 국가는 이들 한명당 형사보상금 8천만~14억7천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4·3 수형 생존자와 유족 39명은 남은 절차로 같은 해 11월 △구금 기간 중 폭행, 고문 등 가혹행위와 이에 따른 후유장애 △70여년간 ‘폭도’로 낙인찍힌 데 따른 명예훼손 등에 대해 국가의 배상책임이 있다며 1인당 2억~15억원의 배상을 청구하는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1심에서 상당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1일 이 사건 판결문을 보면, 제주지법 민사2부(재판장 류호중)는 4·3사건 희생자들이 불법 구금 과정에서 폭행과 고문 같은 가혹 행위를 당한 점, 이들이 70년 이상 전과자로 낙인찍혀 살면서 명예를 훼손당한 점은 국가의 불법행위에 따른 결과라고 인정했다. 다만 이런 점들은 “이 사건 불법행위 과정에서 이뤄진 일련의 행위 또는 그 결과”라며 “(불법구금과) 별개의 불법행위가 구성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시 말해 당시 고문으로 70여년간 후유장애와 정신적 고통 등을 겪었더라도 이는 폭행과 고문 등 별개의 불법행위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불법구금이라는 하나의 불법행위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다.
국가가 지급해야 할 위자료도 생존수형자 1명당 1억원으로 일괄 산정했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제주 4·3사건과 같이 피해자의 숫자가 매우 많아 그 피해의 일률적 회복을 지향해야 할 특수한 사정이 있는 경우 위자료 액수를 정할 때 피해자 상호 간 형평도 고려해야 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희생자 유족 숫자 등에 따른 적절한 조정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비록 이 사건 희생자들 사이에 구금 기간의 차이가 작지 않으나, 앞서 이 사건 희생자들에게 구금 기간에 비례한 형사보상금이 지급됐다. 이와 유사한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위자료 액수 등을 종합해 희생자 본인의 위자료를 1억원, 배우자 5천만원, 자녀 1천만원으로 정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가 인용한 판결은 보도연맹 학살 희생자들에게 위자료를 일괄 8천만원 지급한 사례다.
재판부는 또 대법 판례에 따라 위자료에서 이미 받은 형사보상금은 빼고 지급한다고 결정해, 1심 판결에 따르면 원고 39명 가운데 형사보상금 1억원 미만을 받은 1명을 제외하고는 손해배상금을 하나도 받지 못하게 됐다. 원고 쪽이 판결에 반발하는 이유다.
원고 쪽을 대리한 임재성 변호사는 “이 사건은 (사망에 대한 배상이었던) 보도연맹 사례와 다르다. 1년 구금과 10년 구금이 다른데, 재판부는 형사보상금을 차등적으로 받았다는 이유로 위자료를 일률 1억원으로 정했다”며 “피해자 규모가 크다는 점을 고려한 정책적 판결 같다”고 비판했다. 서울지역의 한 판사는 “구금일자별로 위자료 기준을 얼마나 다르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항소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 다르게 판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제주4·3도민연대는 판결 뒤 입장문을 내어 “재판부는 4·3희생자 수가 많아 희생자 사이 형평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정치가의 발언 같은 판결을 내렸다”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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