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고릴라 탈을 쓴 남성이 여성을 불법촬영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경찰이 핼러윈데이인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고릴라 탈을 쓴 남성이 여성을 불법촬영했다는 사건을 접수하고 수사에 나섰다. 사건은 한 유튜버가 이태원 길거리를 촬영한 영상에 불법촬영 장면이 찍혀 수사로 연결됐다.
그런데 수사의 계기가 된 ‘길거리 영상’은 불법일까, 합법일까? 최근 길거리를 촬영한 영상이나 길거리 실시간 생중계가 인기를 얻는 가운데, 자신도 모른 채 성적 대상화나 성적 모욕의 피해자가 될까 두려워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길거리 영상이라도 누군가의 특정 신체부위를 가까이서 촬영하고, 노출 있는 의상을 입은 여성을 영상 첫 화면(섬네일)로 지정하는 것은 불법촬영물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이러한 영상에 성희롱 댓글을 다는 이들도 명예훼손죄나 모욕죄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3일 경찰 설명을 들어보면, 서울 용산경찰서는 지난 1일 불법촬영 피해 여성이 지난달 31일 이태원에서 자신의 뒷모습을 촬영한 혐의를 받는 남성에 대해 제출한 고소장을 접수하고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해당 남성을 특정하고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입건했다. 이 사건은 이태원 길거리를 촬영한 유튜브 영상에 고릴라 탈을 쓴 남성이 주저앉아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휴대전화로 불법촬영하는 장면이 담겨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논란이 됐다. 피해자도 해당 영상을 통해 피해를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이 영상처럼 특정한 날 길거리를 찍은 영상이나 실시간 길거리 영상을 송출하는 ‘라이브캠’이 유행이다. 이 가운데는 조회 수를 목적으로 ‘핼러윈 길거리’, ‘홍대 불금’ 등의 제목으로 노출 있는 의상을 입은 여성 이미지를 섬네일로 지정하는 경우가 많다. 평소 조회 수가 낮았던 유튜버는 이런 방식으로 지난 핼러윈데이 이태원 길거리 영상으로 이틀 만에 조회 수 11만회를 기록하기도 했다.
여성들은 이러한 영상에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드러낸다. 지난달 31일 이태원에 방문한 정아무개(20)씨는 “술집에 들어가기 위해 20분 정도 대기하는 사이에만 유튜브 라이브 영상을 촬영하는 사람 3~4명을 봤다”며 “핼러윈 길거리를 촬영한 영상을 보니 나도 코스튬을 입었으면 성희롱을 당할 수도 있었겠다는 두려움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이태원을 찾은 변아무개(23)씨도 “노출 있는 의상을 입은 여성들만 찾아다니며 영상을 촬영하는 사람들을 봤다”며 “영상을 촬영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얼굴을 가렸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막기 어려웠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찍히는지도 몰랐을 텐데, 섬네일부터 노골적으로 성희롱을 조장하는 길거리 영상에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길거리 영상도 특정 신체 부위를 가까이서 촬영했다면 불법촬영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혜진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촬영된 결과물을 놓고 봤을 때 상대방에게 성적 수치심, 즉 모욕감이나 불쾌감 등을 일으킨다고 판단되면 범죄”라며 “특히 이 같은 장면을 골라 섬네일로 사용하는 것은 불법촬영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인숙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위원회)도 “길거리를 촬영했더라도 특정 신체 부위를 상대방의 동의 없이 가까이서 촬영한 것은 성폭력처벌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영상에 성적 모욕이 담긴 댓글을 다는 것도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박인숙 변호사는 “이러한 영상에 성희롱 발언이 담긴 제목을 붙이거나 성희롱 댓글을 작성하는 것 역시 명예훼손 등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선희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위원회)는 “어떤 의상을 입고 길거리에 나온다고 해서 마음대로 사진을 촬영하고 범죄를 저질러도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윤주 고병찬 기자
k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