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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성범죄 전문변호사가 옛 의뢰인 고소…배심원단 ‘만장일치 무죄’

등록 2021-11-10 16:09수정 2021-11-10 16:24

수임료 반환 놓고 변호사 사무실 찾았다가
폭행·업무방해 등 고소당한 옛 의뢰인 사건
서울중앙지법.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중앙지법.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 30대 여성 이선희(가명)씨가 피고인석에 섰다. 이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공동폭행과 방실침입, 업무방해였다. 이씨 어머니와 외삼촌, 이씨가 멘토처럼 믿고 따르는 교회 지인도 같은 혐의로 함께 기소돼 법정에 섰다.

이들은 2019년 4월2일 이씨 법률대리인이었던 이아무개(47) 변호사의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 찾아가 사무장 ㄱ씨를 폭행하고 사무실에 침입해 15분간 소란을 피웠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변호사는 다수의 성범죄 피해자 사건을 대리한 유명 변호사다. 검사는 이 사건 피해자인 이 변호사와 사무장 ㄱ씨를 증인으로 불러 당시 상황에 대해 신문했고, 증인석에 선 이 변호사와 ㄱ씨는 피해 사실을 호소하며 ‘피고인들의 처벌을 원한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검사는 피고인들에게 각각 120만~150만원의 벌금형을 구형했다.

그러나 배심원들은 약 15시간 동안 이어진 재판을 지켜본 뒤 만장일치로 이씨 등의 무죄를 평결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선일)도 “배심원들의 만장일치 의견이 있다면 따르기로 결론을 내렸다”며 피고인들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소송 수행 불성실하다” 수임료 다툼

악연으로 끝난 이씨와 이 변호사의 관계는 2017년 시작됐다.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이씨는 지도교수로부터 성적 괴롭힘을 당한 뒤 해당 교수와 각종 소송을 치르는 중이었다. 이씨는 성폭력 피해 사건을 여러 건 수행한 이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가 사건을 의뢰했고, 이 변호사 요구에 따라 수임료 1270만원을 현찰로 완납했다. 목돈을 마련할 형편이 아니었던 이씨가 신용대출을 받아 마련한 돈이었다.

그러나 재판부에 제출해야 하는 변호인 의견서를 이 변호사가 아닌 변호사 자격 없는 인턴사원이 작성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고, 이씨는 2019년 3월 이 변호사에게 ‘소송 수행이 불성실하다’는 취지로 항의했다. 그러자 이 변호사는 “착수금을 반 정도 돌려줄 테니 (내가 맡은) 민·형사사건을 가져가라”며 민사소송 재판부에 사임계를 제출했다. 이후 수임료 전액 반환을 요구하는 이씨와 이 변호사 사이에 수임료 반환액수를 놓고 또다시 갈등이 빚어졌다. ‘빨리 다른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게 돈을 돌려달라’며 사무실에 찾아간 이씨 등을 이 변호사가 고소하면서 국민참여재판까지 열리게 된 것이다.

검찰은 이날 이씨 등이 변호사 사무실 출입을 제지하는 사무장 ㄱ씨를 밀치는 폭행을 저지르고 사무실에 들어가 고성을 지르는 등 이 변호사 업무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 변호사가 소송업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했는지는 이 사건과 무관하고, 수임료를 돌려받으려면 굳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고도 소송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있는데도 피고인들이 그러지 않았다는 점, 결국 수임료 반환을 둘러싼 민사소송에서 재판부가 ‘이 변호사는 300만원을 돌려주면 된다’고 판결한 점 등을 들며 피고인들의 행위가 사회상규를 벗어났다고 주장했다. 이날 피해자 증인으로 출석한 이 변호사는 법정에서 ‘수시로 이씨가 보내는 메일이나 카카오톡 메시지에 답해주는 등 불성실하게 업무수행을 하지 않았고, 사건 당시 큰 공포감을 느껴 업무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증인 “변호사가 트집잡아 괴롭히는 것 같았다”

이씨 등의 상황이 억울하다고 판단해 이 사건 변호를 무료로 맡은 변호사들은 피고인들의 폭행 사실이 전혀 없고, 이씨 등의 행동은 사회상규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피고인들이 이 변호사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ㄱ씨와 신체접촉이 있었던 건 맞지만 막아선 문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접촉이었지 ㄱ씨를 향해 물리력을 행사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는 점, 사무실은 의뢰인들이 찾아오는 공간이고 이 변호사 등이 ‘사임했으니 더는 사무실에 오지 말라’는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다는 점, 변호사 업무 중 하나인 ‘위임계약 해지 시 수임료 반환’을 놓고 피고인들이 항의한 것이 위력을 행사해 업무를 방해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이씨와 이 변호사 모두와 친분이 있으며, 이 사건 직후 두 사람을 만났던 한 방송국 피디(PD)도 이날 증인으로 나와 “항의 수단이 없는 사람들이 항의하기 위해 목소리 높여 언쟁하고 싸우는 걸 자주 봤다. (기소된 사건이) 그런 사건과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고, 일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 중 하나라고 느꼈다. 이 변호사가 여러 가지 명목으로 이씨를 고소한 건 트집을 잡아 괴롭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피고인들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9일 오전 11시에 시작한 공판은 이튿날인 10일 새벽 2시반께 종료됐다. 딸 이씨와 함께 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가 함께 기소된 이씨 어머니는 최후변론에서 “변호사가 구명보트 같은 존재였는데 이 변호사가 사임했을 땐 망망대해에서 구명보트까지 뺏긴 느낌이었다. 1300만원이 누군가에겐 쉬운 돈이겠지만, 저희 같은 서민에겐 2~3년을 모아도 어려운 돈이다. 이런 사정을 헤아려달라”고 호소했다.

배심원들은 심리가 종료된 뒤 약 1시간 동안 논의를 거쳐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했다. 재판 중간중간 눈물을 보이며 억울함을 호소했던 이씨는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자 함께 피고인석에 선 가족들을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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