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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세기의 억만장자는 어쩌다 ‘공룡 덕후’가 됐나

등록 2021-11-14 09:10수정 2023-09-01 09:13

[한겨레S] 김도훈의 낯선 사람
네이선 미어볼드
공룡 화석을 수집하는 억만장자 네이선 미어볼드의 또다른 취미는 ‘요리’다. 그가 2011년 낸 요리책 <모더니스트 퀴진>을 앞에 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공룡 화석을 수집하는 억만장자 네이선 미어볼드의 또다른 취미는 ‘요리’다. 그가 2011년 낸 요리책 <모더니스트 퀴진>을 앞에 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만약 당신이 억만장자라면 어떤 취미를 갖고 싶은가? 그렇다. 정말 의미 없는 질문이다. 일단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억만장자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백만장자야 있을 수도 있겠다만 억만장자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억만장자라고 잠시나마 억지로 가정해보자. 취미? 당신은 ‘쇼핑’이라는 대답을 입으로 소리 내 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쇼핑이 취미가 될 수가 있을까? 뭔가를 산다는 건 취미가 아니다. 그냥 소비다. 지속적으로 같은 것만을 사는 건 취미가 된다. 이를테면 ‘억만장자가 되면 희귀한 엘피(LP)를 모으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마포의 힙스터 당신처럼 말이다.

내가 억만장자라면? 나의 취미는 이미 마이클 크라이턴과 스티븐 스필버그가 1990년대 말 즈음에 훌륭하게 상상해냈다. <쥬라기공원>처럼 공룡을 다시 복원하는 것이다. 혹은 화석들로 가득한 공룡 연구소를 만들고 싶다. 공룡 화석으로 인테리어를 한 카페를 차려도 좋겠다. 메뉴 구성을 특이하게 한다면 의외로 돈이 될 수도 있다. 양이 놀랄 만큼 많은 ‘브라키오사우루스 라테’라거나,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머리가 어디 부딪힌 것처럼 아플 정도로 차가운 ‘파키케팔로사우루스 프라푸치노’라거나. 가만 생각해보니 나는 지금 억만장자가 되었다고 가정하고서도 카페를 차려 푼돈이나 벌 상상을 하고 있다. 상상력조차 소시민적 한계 속에 저당 잡힌 주제를 파악하는 것이 슬플 따름이다.

30대 때 억만장자 됐던 미어볼드
큰돈 드는 공룡 화석 수집 취미

공룡 논문을 쓴 천재 엔지니어

사실 내가 꾸던 ‘억만장자의 꿈’은 이미 누군가가 이루어냈다. 엔지니어이자 사업가인 네이선 미어볼드다. 그는 21세기 가장 유명한 실리콘밸리 테크맨들 중 하나다. 14살에 유시엘에이(UCLA)에 입학한 그는 23살에 프린스턴대에서 수리물리학 박사 학위를 땄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스티븐 호킹과 공동연구를 할 정도로 뛰어난 두뇌를 과시하던 그는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수석전략가 겸 기술총괄 임원으로 일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윈도 운영체제에는 공학의 천재 네이선 미어볼드의 뇌세포가 깔려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네이선 미어볼드는 40살이던 1999년 엠에스를 그만뒀다. 스톡옵션으로 억만장자의 위치에 오른 그는 2000년에 인털렉추얼 벤처스(IV)라는 특허 관리 전문 회사를 차렸다. 여러 기술 특허를 사들인 뒤 상업적으로 발전시켜 기업에 다시 파는 회사다. 그런데 그는 돈을 버는 데 엄청난 재능을 지닌 억만장자인 동시에 ‘공룡 덕후’로도 유명하다. 네이선 미어볼드는 1996년 <쥬라기공원 2> 촬영 현장을 방문한 뒤 세계적인 고생물학자 잭 호너와 친해졌다. 어린 시절부터 공룡을 좋아하던 그는 호너의 조언에 따라 재산 중 일부를 공룡 학회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걸로 성에 차지 않는지 그는 직접 전세계를 누비며 공룡 화석을 발굴한다. 학술지 <네이처> 등에 공룡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한다. 그의 거실에는 티라노사우루스의 실제 화석이 전시되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거실이 얼마나 넓으면 그게 들어갈 수 있을지도 한번 상상해보시길 바란다.

네이선 미어볼드의 취미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그의 취미에는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그걸로 딱히 더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순수하게 공룡을 좋아하기 때문에 화석을 발굴한다. 나 같은 공룡 덕후에게는 축복과도 같은 일이다. 그 외에도 어딘가 좀 덕후스러운 취미를 가진 억만장자는 꽤 있다. 미국의 유명한 헤지펀드 매니저 레이 달리오는 미스터리에 싸여 있는 대왕오징어 탐사에 많은 돈을 지원한다. 조금 더 돈이 많다면? 취미는 우주로 확장된다. 세계 최대의 부자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버진의 리처드 브랜슨은 지금 ‘우주 개발’을 이끌고 있는 리더들이다.

2021년은 민간 우주 개발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해다. 리처드 브랜슨은 7월11일 ‘버진갤럭틱’의 우주 왕복선을 타고 고도 90㎞ 지점까지 상승한 뒤 돌아왔다. 제프 베이조스는 같은 달 20일에 자신이 만든 회사 ‘블루 오리진’의 준궤도 로켓을 타고 11분간 우주여행을 했다. 베이조스는 2022년 하반기에 대형 로켓 ‘존 글렌’을 발사할 계획이다. 로켓이 커지면 여행에 동참하는 사람도 많아진다. 가격도 낮아진다. 언젠가 오게 될 ‘우주여행 대중화 시대’를 열어젖히는 프로젝트다. 물론 브랜슨과 베이조스를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이 업계의 대표는 일론 머스크다. 그의 회사 ‘스페이스 엑스(X)’가 지난 9월 쏘아올린 유인우주선은 사흘간 지구 궤도를 도는 데 성공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 등 억만장자들 사이에 최근 유행하는 ‘취미생활’이 우주 개발이다. EPA 연합뉴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 등 억만장자들 사이에 최근 유행하는 ‘취미생활’이 우주 개발이다. EPA 연합뉴스

부자들의 요즘 유행 취미 ‘우주 개발’

어린 시절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은 나 같은 우주광이라면 민간기업이 우주 개발을 이끄는 21세기의 새로운 움직임이 정말 반가울 것이다. 국가가 우주 개발을 마음 놓고 추진할 수 있는 시대는 막을 내렸다.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반세기 동안 달을 방문한 인간은 없었다. 1981년 첫 발사 이후 우주 개발의 상징이 된 우주왕복선 프로그램도 2011년 폐지됐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 지나치게 많이 든다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정치’다. 냉전이 끝나자 우주 개발은 정치적으로 딱히 이득이 되는 분야도 아니게 됐다. ‘사람을 (쟤들보다 먼저) 화성에 보내겠습니다’보다는 ‘대학등록금을 (쟤들보다 먼저) 절반으로 낮추겠습니다’가 더 표가 되는 시대다. 그러니 민간기업이 막강한 자본력으로 우주 개발을 선도하는 것은 우주광들에게는 그리 나쁜 일이 아니다. 국가가 할 수 없는 일을 이제는 기업이 한다. 패러다임 자체가 바뀐 것이다.

모두가 억만장자들의 우주적 취미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2021년은 억만장자들의 꿈이 이루어진 해이자 예상치 못한 심리적 제동이 걸린 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겨우 두달 사이에 세명의 억만장자가 경쟁하듯이 우주로 인간을 보내는 이벤트를 벌이자 비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유엔세계식량계획 사무총장은 “당신들이 단돈 60억달러만 보태면 굶주리는 사람 4천만명을 도울 수 있다”고 했다. <인디펜던트>는 “지구가 불타는데 부자들은 비싼 놀이기구를 탄다”고 비꼬았다. 영국 윌리엄 왕세손은 “나는 우주로 가는 데 전혀 관심이 없고 우주여행이 초래할 탄소 배출에 의문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 미국 상원은 ‘억만장자세’를 발의했다. 이게 도입되면 머스크와 베이조스를 포함한 슈퍼부자 10명이 전체 세수의 절반이 넘는 322조원 정도의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그러자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를 통해 “내 계획은 인류를 화성에 보내고 의식의 빛을 보존하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사실 그는 비슷한 항변을 지난 3월에도 했다. 버니 샌더스가 머스크의 재산을 탐욕이라고 비판하자 그는 “의식의 빛을 별까지 확장할 수 있도록 돈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나는 일론 머스크가 ‘의식을 빛’을 이야기할 때마다 양가적인 감정에 사로잡혔다.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세금을 내라는 압박을 받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우주 개발이 가져올 미래의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먼저 내세워서 스스로를 변호하는 편을 선택할 것이다. 일론 머스크는 그러지 않는다. 계속해서 ‘의식의 빛’을 말한다. 아서 클라크 소설에 나오는 과학자처럼 말한다. 밤마다 망원경으로 별을 들여다보는 소년처럼 말한다. 맞다. 지구가 불타고 사람들이 굶는다는데 ‘의식의 빛’을 보존하는 인류의 사명을 이야기하는 건 지나칠 정도로 이상적이다. 샌더스가 머스크의 트위트를 보고 얼마나 웃었을지 상상이 가시는가?

최근 부자들 취미 ‘우주개발’ 각광
하늘 보며 같이 꿈꿔볼 순 있잖아

이상·현실 끌어안고 진화하는 우리

하지만 동시에 나는 일론 머스크의 철부지 같은 소리에 괴이한 감동 같은 것을 느꼈다고 고백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라는 닐 암스트롱의 말에 바치는 정신 나간 덕후의 대답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류는 공동의 꿈을 꾸지만 항상 같은 꿈을 꾸지는 않는다. 당신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충분한 자산이 있지만 억만장자들의 우주를 향한 꿈이 사회적 연대를 포기한 값비싼 취미라고 비난할 수 있다. 당신은 오늘을 버틸 자산도 부족하지만 억만장자들이 우주로 쏘아올리는 로켓의 궤적을 보면서 내일을 살아갈 꿈을 꿀 수도 있다. 우리 모두는 가차 없는 현실주의자인 동시에 가망 없는 이상주의자다. 두 자아를 모두 끌어안고 덜컹덜컹 진화하는 존재들이다.

억만장자 네이선 미어볼드는 요리 덕후이기도 하다. 그는 2011년 6권짜리 <모더니스트 퀴진>을 펴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요리책’이라고 상찬한 이 책은 과학을 통해 요리의 원리를 분석하는 백과사전이다. 이것 역시 억만장자의 비실용적이고 호사스러운 취미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한가지 실용적인 팁을 알려드리겠다. 네이선 미어볼드에 따르면 와인을 서빙하기 전에 적당량의 소금을 넣으면 맛이 훨씬 풍부해진다고 한다. 오늘 당장 시도해보시라. 어쩌면 이 팁은 너무나도 비실용적인 이 글에서 유일하게 실용적인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잡지 <씨네21> 기자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했다. 사람·영화·도시·옷·물건·정치까지 관심 닿지 않는 곳이 드문 그가 세심한 눈길로 읽어낸 인물평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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