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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강릉과 서울, 5개월 만에 연결된 두 도시의 죽음

등록 2021-11-22 04:59수정 2021-11-22 07:56

사건의 재구성
지난 6월 강릉에서 30대 남녀 극단적 선택
서울에선 또 다른 30대 남성 주검 발견
강릉서-송파서 5개월 공조수사가 찾은 진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6월18일 오후 강원도 강릉에서 30대 남녀, 남성 쪽 어머니, 이들의 반려견이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여성 ㄱ씨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메모 내용을 토대로, 남자친구 ㄴ씨와 함께 한 사업 실패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짧은 언론보도가 나왔다. 강릉경찰서는 세 사람이 “강릉에 연고가 있던 건 아니”라며 10일 전쯤 서울 송파구에서 렌터카를 빌린 뒤 강릉으로 왔다고 설명했다.

사건은 마침표가 찍히지 않았다. 이들이 숨진 당일 ㄱ씨가 살던 송파구 한 빌라에서 30대 남성 ㄷ씨 주검이 발견됐다. 한밤중 경광등을 번쩍이는 경찰차 주위로 모여든 주민들은 “(주검)부패가 심하다더라”고 수군거렸다. 강릉경찰서가 사건을 종결하지 못한 것은 ㄱ씨 휴대전화에 남아있던 메시지 때문이었다. 휴대전화에는 집주인이 세입자인 ㄱ씨에게 “집 안에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확인해달라”고 보낸 메시지가 남아있었다.

강릉경찰서 공조 요청을 받아 ㄱ씨 집을 찾은 송파경찰서 경찰관들은 ㄷ씨 주검과 맞닥뜨렸다. 약 230㎞가 떨어진 두 도시에서 각각 벌어진 죽음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것일까.

의심은 경찰 수사의 시작이다. 강릉경찰서는 사건을 수사로 정식 전환했고, 강릉서는 숨진 30대 남녀를 피의자로 입건했다. 단서는 ㄴ씨가 ㄷ씨를 다그치는 모습이 찍힌 ㄱ씨 휴대전화 영상이었다. 경찰은 ㄱ·ㄴ씨에게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하고, ㄷ씨의 정확한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수사는 벽에 부딪혔다. 경찰은 ㄱ·ㄴ씨가 ㄷ씨 죽음에 연루돼 있으리란 심증은 있었지만 이를 확실히 입증할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사건 내막을 알고 있을 법한 이들이 모두 숨졌고, 그들의 지인들은 세 사람 사이 사정을 알지 못한 터였다. 하지만 갑작스레 아들을 잃은 ㄷ씨 유족은 명확한 사망 경위와 함께 세 사람 사이에 있었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고 경찰에 요청했다.

ㄱ씨 휴대전화와 달리 지문인증으로 잠겨있던 ㄴ씨 휴대전화가 비밀의 문을 열 또 하나의 열쇠였지만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속이 타던 경찰은 ㄴ씨 주검이 안치된 영안실을 찾아 ㄴ씨 손가락을 휴대전화에 대보기도 했지만 소용 없었다. 강릉경찰서는 강원경찰청에 ㄴ씨와 ㄷ씨 휴대전화 포렌식을 요청했지만 제한된 인력과 밀려있는 사건 탓에 결과가 나오기까지 3개월여를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나온 부검 결과에서는 ㄷ씨 사인이 ‘경구압박 질식 가능성 및 둔력에 의한 손상’이라고 나왔지만 ㄱ·ㄴ씨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한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경찰은 포렌식 결과와 ㄱ씨 휴대전화에 담긴 증거들을 통해 ㄱ씨와 ㄴ씨가 휴대전화로 나눈 대화 내용 퍼즐을 맞춰갔다. ㄷ씨와 ㄴ씨는 선후배 사이였으며, 세 사람은 2018년부터 3년여간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한 동업자였다는 조각이 먼저 나왔다. ㄱ씨가 살던 송파구 빌라는 사무실이었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ㄱ·ㄴ씨는 ㄷ씨의 업무상 실수 등에 대한 불만이 늘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ㄱ씨와 ㄴ씨가 나눈 대화 내용을 봤을 때 오래전부터 두 사람이 ㄷ씨를 상대로 폭행을 했을 것이라고 봤다.

경찰은 ㄷ씨가 숨지기 전날 밤 ㄱ씨 집에 모인 세 사람이 업무 이야기를 하다가 또 충돌한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ㄱ씨가 남긴 영상엔 이들이 ㄷ씨에게 ‘일을 똑바로 하라’고 경고하며 각서를 쓰라고 요구하는 모습이 담겼고, ㄷ씨 얼굴엔 상처 자국이 흐릿하게 보였다고 한다. 얼굴의 상처 자국을 의심한 경찰은 집안에서 ㄴ씨가 휘둘렀을 물건을 수색했고, 진공청소기 파이프에서 ㄷ씨 유전자를 발견했다.

ㄱ·ㄴ씨는 다음날 아침 ㄷ씨 사망을 확인했지만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도피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곧바로 렌터카를 빌렸고 어떤 이유에선지 ㄴ씨 어머니도 동승했다. 경찰은 이들의 동선을 신용카드 결제 내역 등으로 확인했다. 그렇게 며칠을 떠돌다가 강릉으로 이동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ㄴ씨 어머니는 ㄷ씨 사망과 아무 관련이 없었지만 아들에게 소식을 들은 뒤 함께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ㄱ씨는 휴대전화에 “씻을 수 없는 문제가 생긴 것 같다. ㄷ에게 사죄한다”는, ㄷ씨가 볼 수 없는 메모를 남겼다. 5개월에 걸쳐 강릉과 서울에서 발생한 죽음의 퍼즐을 맞춘 강릉경찰서는 피의자가 모두 사망했기 때문에 ‘공소권 없음’으로 지난 12일 사건을 불송치 처분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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