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사업자로서 정수기 회사인 청호나이스와 위탁 계약을 맺고 정수기 설치와 에이에스(AS·사후관리) 등을 해온 기사도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청호나이스를 상대로 퇴직금 청구 소송을 낸 ㄱ씨 등의 상고심에서 이들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3일 밝혔다.
ㄱ씨는 청호나이스에서 2009년 7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서비스 용역위탁계약을 맺고 기사로 일했다. ㄴ씨도 2008년 2월부터 2016년 1월까지 같은 계약을 맺고 일했다. 이들의 계약서엔 “(청호나이스와) 근로관계에 있지 않고 (본인은) 스스로 판단에 따라 고유 사업을 영위하는 독립 사업자다. 따라서 퇴직금을 청구할 수 없다”고 쓰여있었다. 그러나 ㄱ씨와 ㄴ씨는 계약 해지된 뒤 “종속적 노동관계에 있었다”며 청호나이스에 각각 퇴직금 3183만원과 1856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ㄱ씨 등 업무 형태를 보면, 청호나이스는 ㄱ씨 등 관리 기사들을 광역-권역-사무소-팀으로 순차 구성한 전국적 조직의 팀에 소속시키고, 본사에는 이들을 관리하는 부서를 두기도 했다. 또한 기사들에게 준 개인휴대단말기(PDA)를 통해 제품 설치 및 사후관리 업무를 배정했다. 고객이 직접 기사에게 사후관리를 요청해도 기사가 청호나이스에 연락해 전산으로 업무 등록 및 배정 절차를 거쳐야 해당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다. 또한 이들은 고정적 기본급 없이 실적에 따라 제품 설치 수수료를 정기적으로 받기도 했다.
1심은 2018년 3월 ㄱ씨와 ㄴ씨 청구를 기각하며 “청호나이스에 구체적 지휘나 감독을 받지 않고 독립해 자신의 계산으로 위탁 계약상 용역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며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노동자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위탁 계약 형식에도 불구하고 ㄱ씨 등이 종속적인 관계에서 청호나이스에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 계약관계로 봄이 타당하다”며 “근로기준법상 적용대상인 노동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청호나이스에 배정받은 제품 설치 업무를 수행하는 등 청호나이스가 ㄱ씨 업무수행에 관해 상당한 지휘 감독을 했다고 볼 수 있다”며 “수수료가 근로에 대한 대가로서 임금 성격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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