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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숨쉬기조차 힘든 엄마…난 12살 간병인입니다

등록 2021-12-10 04:59수정 2021-12-10 11:21

<한겨레> 나눔꽃 캠페인
간경변 앓는 엄마 보살피는 민우
두 식구 살기도 비좁은 원룸서
기초수급비 등 월 100만원으로 버텨
“엄마 건강해지면 꼭 여행 가자”
간경변을 앓고 있는 어머니가 2일 원룸에서 아들 민우(가명)의 병간호를 받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간경변을 앓고 있는 어머니가 2일 원룸에서 아들 민우(가명)의 병간호를 받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꿈이요? 경찰이요.” “얼마 전엔 프로그래머라며? 매번 바뀌네.”

12살 민우(가명)는 엄마(47)의 말에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민우의 꿈은 그 나이 또래 아이처럼 자주 바뀌기 일쑤다.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가도, 암호 같은 문자를 입력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기도 하다. 지금은 범인 잡는 경찰이 꿈이라고 한다. 힘도 세고 제복 입은 경찰이 멋있어 보인단다.

민우는 매트리스 두개를 놓으면 꽉 차는 원룸에서 꿈을 꾼다. 병·의원들의 간판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경기도 한 지방자치단체의 상가 건물. 가정집이 있으리라 상상하기 어려운 상가의 꼭대기 층에는 좁은 복도를 따라 원룸 다섯개가 붙어 있다. 그중 한곳에서 민우와 엄마가 살고 있다.

온종일 누워 있는 엄마, 간호하는 아들

민우의 엄마는 온종일 집에서 누워 있다. 건강했던 엄마는 2018년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고 배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병명은 간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급성 간경변이었다. 배에 가득 찬 복수를 빼기 위해 1년 가까이 통원치료를 하던 도중 병은 점점 심각해졌고, 급기야 혼수상태가 됐다. 의식을 잃은 엄마는 결국 중환자실에 실려 갔다.

20여일 만에 엄마는 눈을 떴다. “처음에 깨니까 온갖 관이 몸에 달려 있고, 말은 안 나오고, 다리에 감각이 없어서 움직이지도 못했어요.” 엄마는 병상 옆 간이 의자에 앉아 있던 민우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엄마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그동안 민우가 할머니와 번갈아가면서 엄마를 보살폈다는 사실이다. 당시 9살이던 민우는 병원에서 이미 유명인사였다. “어린애가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분들 식사도 옮겨서 갖다 놓고 그랬대요. 병원에서 이쁨을 많이 받았어요.”

엄마가 병원에 누워 있던 1년 동안 민우는 학교가 끝나면 병실로 찾아왔다. 병원 직원들이 바빠 보이면 알아서 엄마의 기저귀까지 갈아주는 등 알뜰살뜰하게 엄마를 챙겼다. “민우가 옆에서 제 온갖 수발을 다 들었죠. 나중에 병원에서 아이가 너무 어려서 걱정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했어요.” 나중에는 민우가 병원에 나오지 못하도록 민우를 지인 집에 부탁해 맡기기도 했다.

요즘도 엄마는 매달 5일씩 두번,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다. 주로 폐까지 차오른 물을 빼내는 치료를 받는다. 퇴원 뒤 집에서는 대부분 누워서 보낸다. 담석 때문에 통증이 심해 똑바로 눕지도 못하고 옆으로 돌아서 누워야 한다. 눕기 힘들어지면 앉는 자세로 잠을 청할 때도 있다.

자다가 다리에 경련이라도 오면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뼈가 아예 뒤틀리는 느낌이거든요. 그럴 때마다 민우도 깨서 제 다리를 허겁지겁 주물러주는데, 애 손힘이 얼마나 되겠어요. 급하니까 119를 부를 때도 있었어요.” 외출은 꿈도 못 꾼다. 다리가 아픈 것은 물론이고, 아침에는 이뇨제를 복용하다 보니 오전 내내 화장실을 들락날락한다. 여기에 마스크를 잠시만 껴도 호흡이 가빠진다.

방구석에 놓인 간이 탁자에는 온갖 약봉지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엄마가 매일 복용하는 약은 한때 28개까지 늘어난 적도 있다. 간경변으로 온 합병증이 많기 때문이다. 위궤양약부터 근육이완제와 진통제까지. 매번 신경 쓰지 않으면 제대로 다 챙겨 먹지 못할 정도다.

간경화를 앓고 있는 어머니가 2일 원룸에서 아들 민우의 병간호를 받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간경화를 앓고 있는 어머니가 2일 원룸에서 아들 민우의 병간호를 받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민우는 한창 자랄 나이인데

민우는 한창 자랄 나이인데 민우의 엄마와 아빠는 민우가 7살 때 헤어졌다. 성격 차로 다툼이 잦았고, 헤어진 뒤에는 민우의 양육비를 보내주거나 연락해온 적이 없다. 엄마는 민우와 함께 둘이서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요즘같이 몸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 때에는 그 다짐이 자주 무너진다. 엄마는 누워만 있는데, 민우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난다. 갖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많아지는 때다. 언제부턴가 민우는 엄마에게 말을 꺼낼 때 ‘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내 친구 누구는 이런 게 있다는데….’ 축구를 좋아하는 민우는 지난해부터 다닌 지역아동센터에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축구화를 받았다. 그러나 금세 발이 자라서 못 신게 돼버렸다.

민우는 음식 중 치킨을 제일 좋아한다. 민우네 집이 있는 건물에는 치킨 가게가 많지만 정작 언제 먹었는지 기억은 아득하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몇몇 반찬 통 외에는 별다른 음식이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병 때문에 짠 음식도, 과일도 많이 먹으면 안 되는 등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제한적이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하다 보니 장을 보는 것도, 요리하기도 어렵다. 결국 엄마는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해 몸이 점점 말라간다. “약을 너무 많이 먹다 보니 입맛도 떨어지더라고요. 민우가 점심은 학교에서 먹으니까 혼자 챙겨 먹기도 그래서 점심은 건너뛰고요.” 민우네 모자는 일주일에 두번 굿네이버스에서 제공하는 밥과 국, 밑반찬에 끼니를 의존하고 있다. 민우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주는 저녁 도시락을 먹지 않고 뒀다가 엄마 먹으라며 챙겨준다. 엄마는 민우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다닐 거라 짐작할 뿐이다.

모든 게 미안한 엄마지만, 무엇보다 민우만의 공간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게 제일 안쓰럽다. 민우도 이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갈 나이인데, 열악한 원룸에서 책상 하나 없이 지내고 있다. 방에는 간이 탁자만 하나 보일 뿐이다. 이전에 살던 집은 빌라 지하방이었지만 그래도 거실과 방은 분리돼 있었다. 보증금이 없는 집을 급하게 찾다 보니 선택지가 별로 없었고 지금 집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다. 민우네 집 벽지는 노랗게 변색됐다. 옷장도 없어 벽에 몇 안 되는 옷가지를 걸어둬야 한다. 모자가 눕기만 해도 꽉 차는 방이라 작은 냉장고 외에 별다른 가구는 없다. 작은 창문은 에어컨에 연결된 줄에 걸려 완전히 닫히지 않는다. 밖이 어두워지면 창문 틈 사이로 불빛과 바람, 소음이 수시로 민우네 집을 침범한다. “임대주택도 여러번 신청했는데, 아무래도 제가 나이가 젊은 편이다 보니 계속 탈락하더라고요. 엄청난 집을 바라는 것도 아니에요. 민우가 공부할 책상을 둘 방이 있는 집이었으면 좋겠어요.”

간경변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민우가 사는 집. 냉장고가 비어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간경변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민우가 사는 집. 냉장고가 비어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같이 여행 가고 싶어요”

일을 할 수 없는 엄마는 앞으로도 돈 나갈 곳이 많아 무섭다. 아프기 전에는 학교나 무료급식소에서 조리노동자로 일했지만 이제는 기초생활수급비 약 90만원과 주거급여 22만원이 수입의 전부다. 월세 30만원과 관리비, 비급여 항목의 진료비와 약값, 통신비 등 생활비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제가 먼저 건강해야 민우를 챙길 수 있으니 열심히 치료받을 수 있게 병원비 부담이라도 덜어지면 좋겠어요.” 물론 당장 걱정되는 것은 겨울철 난방비다. 보일러를 틀고 싶은 걸 꾹 참은 게 여러 번이다. 이번달만 벌써 난방비만 8만원이 나왔다고 한다.

엄마는 건강해지면 일도 시작하고, 민우와 같이 여행을 다니며 추억을 만들고 싶다. 숨이 쉽게 가빠져 말을 하기도 어려운 엄마는 집에서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있는 민우를 볼 때마다 시간이 가는 게 야속하다. “저도 아프기 전에는 활동적인 사람이라 민우랑 고속버스 타고 많이 국내 여행 다녔거든요. 특히 강원도 바닷가를 많이 놀러 다녔어요. 근데 얼마 전 민우가 나는 왜 한번도 어디 안 데려갔느냐고 하더라고요.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이 안 나나 봐요. 이해는 하면서 꽤 섭섭했죠.” 그래도 최근엔 지역아동센터에서 친구들과 놀이공원도 가고 최신 개봉 영화도 봤다고 한다.

쾌활하고 싹싹한 민우는 친구가 참 많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축구를 즐기고, 지역아동센터에서도 형, 누나, 동생들과 잘 어울린다. “제가 외동으로 자랐는데 민우도 외동아들이라 걱정이 많았거든요. 형제자매는 물론 사촌들도 없으니 혹시나 외롭지는 않을까 생각했죠. 대견하게도 친구를 잘 사귀더라고요.” 그래도 민우가 친구들 사이에서 주눅 들지는 않을까 늘 걱정이다. “민우가 친구들 만나는 걸 좋아해서, 가끔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온다고 하거든요. 근데 우리 집은 친구를 데려와서 잘 공간이 없단 말이에요. 그래서 민우한테 자고 오지 말라고 말하죠. 그게 참 속상해요.” 민우가 아무 말 없이 엄마의 등을 쓰다듬고 엄마와 눈을 맞췄다. 엄마와 민우는 늘 서로에게 기대며 어려움을 헤쳐나가려 한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캠페인에 참여하시려면

민우네 가정에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우리은행 1005-903-850183 예금주: (사)굿네이버스인터내셔날)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굿네이버스(1544-7944)로 문의해주십시오. 모금에 참여한 뒤 굿네이버스로 연락 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목표 모금액은 2100만원입니다. 후원금은 민우네 가정의 주거 지원비, 학습 지원비, 어머니 의료 지원비로 쓰이고, 2100만원 이상 모금되면 민우네 가족처럼 어려운 가정에 지원됩니다.

보도 이후

<한겨레>와 월드비전이 함께한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어려운 환경과 장애에도 불구하고 스케이트를 타며 꿈을 키워가고 있는 진호의 사연(<한겨레> 11월 5일치 12면)이 소개된 뒤 총 1011만9200원(12월 8일 기준)의 정성이 모였습니다. 월드비전은 “진호가 꿈을 잃지 않도록 따뜻한 마음을 보내주신 일시계좌 후원자 121분, 네이버 해피빈 후원자 1571분께 감사드린다. 소중한 후원금을 잘 전달하겠다”고 전해왔습니다. 또 월드비전은 “월드비전 ‘꿈꾸는아이들’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 박하선씨가 기사를 보고 진호의 꿈을 응원하기 위해 1000만원의 후원금을 전달했다”고 전했습니다. 배우 박하선씨를 비롯해 진호네 가정에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신 모든 후원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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