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대법정 입구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최소 10년 이상 법조경력을 가진 법조인 가운데 판사를 뽑는 법조일원화 제도 전면 시행은 3년 더 늦춰지게 됐다. 법관 임용을 위한 법조 최소 경력 ‘10년’은 5년, 7년 등 단계적으로 높여 애초 2026년부터 유지될 예정이었으나, 이번 국회 결정으로 2029년부터 적용된다. 이를 두고 “법조일원화 취지에 역행한다”는 비판과 “법관 임용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현실론이 팽팽히 맞선다. 하지만 법조계 한편에서는 ‘이런 논쟁보다는 유예된 기간 만큼 판사 증원 등 법조일원화를 안정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20여년 논의해 사회적 합의 이뤘지만, 실행은?
법조일원화는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이들을 법관으로 뽑아 국민 눈높이에 맞는 법원을 만들겠다는 사법개혁의 하나로 도입됐다. 법원 내부 문화에 길들여지지 않은 중견 법조인을 판사로 임명해 법원의 서열주의, 순혈주의, 관료주의도 깰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모았다. 1993년 논의가 시작된 이래로 한국 사회는 법조일원화의 취지에 큰 이견 없이 사회적 합의를 이뤄왔다. 그 합의의 결과가 2011년 법조일원화를 제도화한 법원조직법 개정이고, 2013년부터 단계적으로 3년, 5년 이상 경력을 가진 법조인 중에서 판사를 선발해오고 있다.
이런 기류에 변화가 생긴 것은 올 초 법원이 판사 임용에 필요한 법조경력을 애초 계획한 10년이 아니라 5년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면서다. 지금도 판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10년 이상 경력의 법조인 가운데 판사를 뽑게 되면, 판사 부족 문제가 지금보다 악화할 것이라는 게 법원의 주장이었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한 판사는 “지금 법원은 사건 수에 견줘 판사 수가 크게 부족해 업무 강도가 매우 높다. 로펌에 자리 잡아 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변호사라면 급여를 깎아가면서 법원에 올 이유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검사들 사이에서도 같은 월급 받으면서 굳이 업무 부담이 큰 법원에 올 이가 얼마나 될까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주장은 판사 임용에 필요한 법조경력을 5년으로 낮추는 법안 발의로 이어졌고, 지난 8월 국회 처리 직전까지 갔다가 부결됐다. 이후 지난 9월 법조일원화의 전면 시행 시기를 3년 늦추는 내용으로 변형된 형태의 법안이 다시 발의돼, 지난 9일 국회에서 최종 가결됐다. 법원의 ‘판사 부족’ 논리가 일정 부분 받아들여진 것이다.
법원은 그동안 법이 정한 최소한의 경력을 채운 이들을 중심으로 판사를 임용해왔다. 참여연대가 지난달 24일 펴낸 ‘법조일원화 10년, 법관 임용 실태와 문제점’ 보고서를 보면, 2013년 법조일원화 제도가 시행된 이후 경력 최소 요건에 해당하는 법조인이 판사에 가장 많이 임용됐다. 참여연대는 2013년부터 임용된 법관 1천명의 경력 연차를 전수조사했다. 최소 3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법관을 뽑는 시기였던 2013~2017년에는 3년 경력의 임용 비율이 최소 52.4%(2013년)에서 최대 79.6%(2016년)였다. 5년 이상 기준이 적용된 2018년부터 올해까지도 최소 52.4%(2019년)∼최대 71.3%(2021년) 비율로 5년 경력만 채운 이들이 임용됐다. 법조일원화의 목표인 10년 이상 경력의 법관이 채용된 비율은 2018년(18.4%)을 빼면 모두 한 자릿수에 그쳤다. 참여연대는 “법원이 하한선인 법조 요구 경력을 사실상 상한선으로 운용해왔다”며 “그 결과 법원 내의 기수 문화가 사실상 3년, 5년의 기간으로 연장되어 그대로 유지되어 온 반면, 사회적 경험이 풍부한 법조인들로 법관을 임용한다는 법조일원화 취지는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판사 증원·선발방식 고민하고, 법조일원화 중간점검해야”
이 때문에 법 개정으로 유예된 3년 동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판사 증원 방법부터 모색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판사의 다양성 확보는 물론, 법원이 주장해 온 ‘판사 부족’ 상황을 깨기 위해서는 판사 증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법센터는 지난 9일 성명을 내어 “(법원의 법조경력 연한 단축 시도를 통해) 법관 증원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문제라는 것이 확인됐다. 법관 수 부족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법원개혁을 퇴보시키는 지렛대 논리로 또다시 등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판사 출신인 차성안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법조일원화가 유의미하려면) 각종 시험에서 취득한 성적이 아닌, 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법조인의 실무능력, 인품, 평판 등을 고려해 지금보다 더 우수한 법관을 뽑을 수 있어야 하지만, 현재 신규 법관 임용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의 조직과 관련 위원회로서는 이런 평가 업무를 전혀 실질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법조일원화를 도입한 다른 나라에서 1명의 법관 지원자의 실무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들이는 엄청난 노력과는 간극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최근의 경력 연한 단축 논란을 계기로 법조일원화를 제대로 중간점검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서선영 민변 사법센터 법원개혁 소위원장은 “법원이 법조일원화 취지에 반하는 방식으로 판사를 뽑고, 최소 경력 연한 단축을 주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금까지 법조일원화 실행을 사실상 법원에만 맡겨두었기 때문”이라며 “한국 사회가 법원의 잘못을 잡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논의해서 법조일원화 선발기관, 선발방식, 법조일원화 선발 이후 운용방식 등을 정립하고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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